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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Aug 23. 2016

이 여름이 가고 나면

6개월마다 하는 정기검진이 다음 주로 다가왔다.


암환자가 된 지 삼 년이 넘고 보니 눈만 뜨면 들여다보던 암 카페도 이젠 시들해지고(내가 아니라 내 글을 읽는 회원들의 반응이) 수술과 항암으로 투병하는 그들과 거리가 있는 나의 일상 이야기는 더 이상 회원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이런저런  써대다가 마침내 딸아이 자소서까지 올리는 어리석은 만행을 저지르고는 첫 덧글로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어느 회원의 지적에 나는 벌게진 얼굴로 서둘러 글을 삭제했다.


해가 지고 나면 두 시간씩 걸으며 글을 구상하던 버릇도, 새 글을 올리고 나면 울려대던 덧글 알람도 없는 나의 일과는 심심하고도 지루했다.


세상사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물처럼 흘러가니 어제의 물은 더 이상 오늘의 것이 아닌데 사람 인연도 그렇지만 우리 삶의 순간들은 끝없이 나를 스쳐 지나가고 만다.




그런데 검진 시기가 다가오면 왜 늘 몸이 먼저 반응을 하는 건지 인체의 신기함에 그저 놀라게 된다.


그동안 검진 때가 되면 귀가 울리거나 가슴이 두근거리며 숨이 차는 증세가 생기더니 이번엔 속에서 산패한 냄새가 올라온다.


예전에 위가 있을 때에도 장거리 명절을 쇠러 다녀 때 같은 증세가 있었는데 위가 없는 지금도 여전히 같은 냄새에 시달리니 위장의 문제는 아닌 듯한데 공통점이라면 이번에도 시댁 형제들과 장거리 여행을 하고 온 다음부터이니 몸이 피로하고 컨디션이 나쁠 때 그런 것 같다.


검진을 코 앞에 두면 지난 생활의 반성문을 쓰게 된다.


건강한 음식만 먹었는지, 운동은 꾸준히 했는지, 물도 자주 마시고 스트레스 안 받았는지 뒤늦은 확인을 하며 반성하는 마음으로 지내는데 검진이 지나가고 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충 살고는 한다.


빛나는 5년 졸업장을 받기까지는 잊을만하면 깊이 반성해야 하는 검진이 네 번 더 남아있다.


검진과 함께 이 여름이 지나가면 새 집이 다 지어질 것이고 가장 먼저 초대하고 싶은 사람은 카페의 옛 회원들이다.


암 수술하고 집에 혼자 쓸쓸히 남아 봄날의 햇살을 눈물로 보낼 때 암 카페에 우연히 가입해서 하루하루 새로운 회원들과 알게 되어 적극적으로 사귀며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정든 회원들이 있다.


동병상련의 진한 정이 얼마나 깊던지 어떤 땐 무심한 가족보다도 더 가깝게 여겨져 눈만 뜨면 안구건조의 뻑뻑함을 무릅쓰고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카페 글에 울고 웃다.


자주 만나는 사람도 친구나 동료에서 회원들로 바뀌고 그들과 함께 했던 즐거움은 암을 잊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랬던 이들과 집들이를 핑계 삼아 새 집에 모여 먹고 자고 하면서 끝없이 떠들고 웃을 생각을 하면 이 더위가 어서 물러가기만을 바라게 된다.


정들었던 회원 중 많은 이들이 저 하늘의 별이 되었고 때로는 탈퇴하기도 해서 오래된 회원은 이제 손꼽을 정도로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여름의 지긋지긋한 더위도 또한 지나가리니 인생사 모든 것은 영원한 것도, 변하지 않는 것도 없다.


카페에는 집이 다 지어지면 집 사진이나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글은 이제 안 쓰기로 했다.




글 소재를 즐겨 제공했던 첫째는 이번 학기에 복학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며칠 전 가족들에게 작은 선물을 나눠주며 특히 내게는 자기 얘기를 브런치에 좀 좋게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비췄다.


내가 받은 선물은 눈 영양제와 발에 붙이는 팩과 립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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