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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Sep 13. 2016

전원 주택에서 오래 버티기

전원주택에서 안 하겠다고 결심한 것들을 다 하고 말았다.


다락, 천창이 그것이고 나중에는 벽난로도 가세할 참이다.


지난 주말에 가본 현장에서는 목수 두 분이 다락에 오르는 계단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 집을 설계해 준 건축가가 외국 잡지에서 본 계단이라면서 모형까지 만들어 설명해주었는데 내가 즐겨보는 방송인 <SBS 좋은 아침 - 하우스>에서도 지난주에 그 계단이 화면에 잠시 나오기에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경사가 너무 가파르기 때문에 다리가 튼튼한 사람만 오르내려야 할 것 같다.


집 내부에는 회벽으로 마감이 되어 있어서 이제야 집이 집답게 보이기 시작했고 부엌 가구를 주문해야 하는 시기가 되어서 한샘 팀장이 현장으로 방문해서 실측을 하고 그 자리에서 가격과 3D로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의 부엌이 한샘으로 되어 있고 서울의 아파트는 저렴한 것으로 했기 때문에 부엌을 비교하기가 쉬웠는데 오래 두고 쓰려면 좋은 가구로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친정 엄마가 먼저 부엌 가구를 해주신다고 제안을 하셔서 오백 만원의 비용이 손쉽게 충당이 되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하시는 말씀이 우리 집의 튼튼한 가구들을 보니 오래 쓰려면 좋은 걸 해야겠더라는 것이었다.


맞벌이할 때 샀던 식탁과 소파, 침대, 아이들 가구는 모두 가격이 좀 있었지만 좋은 것으로 장만하고 보니 이십 년 가까이 아무 탈없이 잘 쓰고 있는 걸 눈여겨 보신 엄마의 고마운 말씀이었다.


부엌 타일이 선명한 노란색이다 보니 부엌 가구는 흰색 하이그로시로 상하부장을 맞추고 최신형 후드와 전기레인지는 3구짜리로 하며 수전은 편리함과 디자인을 고려해서 일사천리로 선택할 수 있었다.


엄마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돈을 아끼느라 사제품으로 고르고 가스레인지에 후드는 실제로 쓰지도 않으니 설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에게 쓰는 돈은 피같이 아끼며 평생 절약만을 미덕으로 살아온 엄마가 내게는 마치 큰손처럼 쓰는 걸 생각하면 죄책감만 썰물처럼 밀려들 뿐이다.  


타일 작업은 추석이 끝나고 나서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추석 연휴가 있어서 공사는 시월 중순이 넘어가야 마무리가 될 것 같다.


그런데 시골에 새 집을 지어 살려면 이장으로부터 마을 발전기금을 요구하는 전화를 받게 된다.


지난봄에 집을 지어 입주한 우리 옆집의 어르신에게 물어보니 마을 회관에 가서 인사하고 이장에게 발전기금으로 삼십 만원을 줬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작년 삼월부터 이 마을에 살기 시작했고 이십 년 전 그 마을에 집을 짓고 살던 시누이의 성당 교우를 이웃으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웃의 중재로 마을 체육 대회 때 찬조금 십만 원만 내는 걸로 좋게 타협이 되었다.  


군수로 출마까지 했던 동네 이장에게는 따로 과일 한 상자를 선물했다.


이제 시골에서 집까지 짓고 본격적으로 동네 주민으로 입성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동네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흉흉하기만 하다.


새로 심은 우리 집 전봇대가 시야에 걸린다고 한전에 민원을 넣은 뒷집의 노부부는 사 년을 살고 결국 집을 내놨다.


 정원의 소나무가 멋지게 구부러진 이층의 커다란 주택을 사서 이사올 땐 그 집을 보고 나니 다른 집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단박에 계약을 했다고 하는데 살아보니 집이 너무 커서 청소하기가 힘들고 집 관리가 힘에 벅차서 서울 근처 전철역 가까운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이유였다.


또 셋집의 바로 뒷집은 지은 지 삼 년이 넘은 주말주택인데 처음 일 년 동안은 지인들이 주말마다 찾아와서 힘들었다면서 지금은 한 달에 한 번이나 올까 말까 한 형편이다.


길 아래쪽에 나란히 지은 두 집도 사오 년 살다가 요새 집을 팔고 나가버려서 새 주인이 주말마다 바비큐 파티를 하느라 연기를 피워 올린다.


시골 생활은 삼 년 살다가 못 견디고 도로 도시로 돌아간다더니 실제로 주변의 이웃집이 그러하다.

 

나도 내년이 삼 년째인데 집까지 지어 놓고 나서 이웃들처럼 시골의 적막과 불편을 못 견디고 마는 건 아닌지 남들은 집이 다 되어가니 얼마나 좋으냐고 배 아프다고 난리인데 텅 비어버린 통장과 줄줄이 떠나는 이웃을 보니 슬며시 한기가 드는 건 날씨 탓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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