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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Oct 25. 2016

실연의 상처

입안이 헐어서 먹기가 무척 힘들다.


막 미역국을 끓여놓고 간을 본다고 한 숟갈 입에 댔다가 고통스러운 뜨거움에 화들짝 놀라 간이고 뭐고 숟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따끈한 두부조림도, 쫄깃한 고구마 줄기 볶음도 먹지 못했다.


입에 넣을 수 있는 건 미지근한 우유와 식힌 맨밥에 계란을 얹은 것 정도였고 바나나도 보리차도 빨갛게 벗겨진 점막에 닿기만 하면 따갑고 쓰라렸다.


못 먹으니 기운이 없고 매일 하던 걷기도 못한 지 여러 날이 지났다.


내가 이 꼴이 된 것은 실연을 했기 때문이다.


중년의 나이에 실연씩이나 해보다니 슬픈 중에도 달콤 쌉싸래한 기분이 드는 건 연애를 해 본 지 너무나 오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연애의 대상은 다름 아닌 암 카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암 카페의 글쓰기가 내 실연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삼 년 동안 일주일에 두 세편씩 글을 써대며 내가 살아왔던 인생의 모든 이야기를 쏟아부었을 뿐 아니라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도 깨알같이 썼다.


저녁의 산책길에서 줄거리를 구상하고 식구들이 모두 나간 오전에 CBS 라디오의 클래식을 들으며 한두 시간 동안 글을 쓰는 시간은 내게 가장 행복하고 소중했다.


그것뿐인가


글을 올리고 나면 회원들의 열성적인 덧글은 알람이 울릴 때마다 설레는 기쁨을 주었다.


그런 생활을 몇 년 동안 지속하다가 마침내 그만두어야 할 결심을 했을 땐 마치 든든하고 포근했던 애인을 잃은 것처럼 방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 카페는 마치 생물처럼 신진대사를 왕성하게 이루어 옛 회원은 사라지고 날마다 새로운 회원들이 나타나 그들의 사연을 풀어내니 이제 그만 떠나야 할 때가 오고만 것이다.


마음의 병은 면역력이 약한 암환자를 가만 두지 않았다.


입안이 헐고 열이 나고 편도선이 부었다.


작가의 꿈을 이루며 너무나 즐거웠던 딱 그만큼 지금 나는 슬프고 아프다.


좀 더 지각이 있었더라면 조회수와 덧글이 서서히 줄어들며 글에 대한 반응이 시들해질 때 떠날 준비를 해야 했는데 더 늦출 수 없을 때가 되어야 깨닫는 건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실연의 열병을 한동안 앓고 나니 나는 조금 더 성숙해진 것 같고 조그만 일에도 기뻐 날뛰고 슬퍼 좌절하던 모습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내가 암 카페에 애정을 갖고 열심히 한 만큼 대가도 따랐다.


4만 6천 여명의 회원 중에서 다섯 명이 최고 등급인 아름다운 동행 급으로 선정되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되었다.


여동생은 그게 뭐라고 좋아하냐고 대놓고 비웃었지만 살면서 내가 누린 최고의 경쟁률이라고 하면 그 심정이 이해되려나   


잘나지도 똑똑하지도 못했던 나를 같은 암환자라는 이유로 따뜻하게 응원해주었던 회원들이 지금 생각해보니 가장 너그럽고 후했던 독자들이었다.


내가 지닌 하찮은 글재주를 작가라고 추켜주며 더 많은 글을 써내게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회원들로 한정된 카페와는 달리 드넓은 브런치가 때로는 실제로 수익을 발생시키기도 했다.


어제 우리 남편과 이름이 같은 친정 사촌 오빠의 아들 결혼식에 갔는데 큰집의 막내 언니가 나를 보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핸드백에서 편지봉투를 건네주었다.


꽤 두툼해서 나는 언니에게 웬 편지를 썼냐고 물었다.


그 속엔 스무 명의 신사임당이 내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언니는 카톡 대문 사진에 올려놓은 브런치의 내 이름을 보고는 글을 읽었다고 하면서 집 지은 걸 축하한다며 미리 숙박비를 주는 것이라는 센스 있는 말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보여주었다.


커튼도 달아야 하고 식탁도 사야 하는데 누구 표현처럼 이미 통장이 텅 비어버린 텅장이 돼버려서 나는 사양도 않고 고맙다며 덥석 받았다.


집에 돌아오니 시누이가 또 전화를 해서 천만 원 같은 백만 원을 줄 테니 그걸로 똑 부러지게 뭘 하나 장만하라고 한다.


실연의 상처는 아마도 곧 치료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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