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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Oct 28. 2016

집 짓기의 마지막, 조경

시월 중순이면 집이 완성된다는 남편의 말만 믿고 내 지인들의 집들이를 추진했던 나는 물정 모르는 바보가 되었다.


준공 허가가 남아있고 조경이 완성되기까지는 적어도 열흘 이상이 필요했다.


퇴직하고 동남아(동네의 남아도는 아줌마) 생활을 몇 년 했더니 안 그래도 주변머리 없고 어리숙하지만 더 멍청해진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상했다.


집 짓는 데 따르는 각종 절차와 세금은 어찌 그리 많은지 생전 처음 듣는 용어를 알아듣는 것조차 벅차지만 정신줄을 부여잡고 정신없이 메모를 해가며 따라잡으려 애를 썼다. (그런데 알고 보니 법무사가 대신 다 해준단다. 이런 써글~)


시골집에 인터넷과 티브이를 연결하는 것도 온갖 정보를 들은 후 결정을 내리고 복잡한 신청 절차를 두루 거쳐야 했으니 (그저 전화 한 통이면 되는 일인데도)그것이 벅차게 느껴지는 자신이 마치 뒷방 늙은이처럼 무력하고 서글프게 느껴졌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일은 그래서 즐겁다.


조경은 전적으로 남편이 결정하는 부분이라 나는 완성된 사진을 보며 기꺼워하기만 해도 되었다.


흙을 들이부어 돋운 마당과 밭은 큰 돌로 경계를 만들고 진입로를 파낸 후 바닥돌을 깔고 주차장에 자갈을 쏟고 나무까지 옮겨 심는 것으로 조경은 마무리되었다.



울타리는 두르지 않고 대문도 달지 않았다.


시골 사람들이 외지인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사 와서 집을 지으면 울타리부터 두르고 대문을 달아놓는 것이라고 한다.


고라니나 멧돼지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나 그건 또 내년 봄이 되어 고민하면 되는 거고 울타리를 둘러놔야 나중에 분쟁이 없다는 이웃의 성화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중이다.


대문은 제주도의 정랑처럼 긴 장대로 표시하는 정도로만 할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갈을 부어야 한다는 마당도 남편 소원대로 잔디를 심었다.


나중에 자갈을 들이붓더라도 한번 해보고나 붓는다는 남편이기에 내년 봄부터 나는 눈만 뜨면 쭈그리고 앉아 잔디와 잡초를 가려내야 할 판이다.


남편이 집을 짓는 시공사 역할을 했으니 나는 잔디밭을 선물하겠다고 이미 약속했기 때문이다.


조경의 마무리는 나무를 심는 것인데 여기에 또 입 가진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뒷마당엔 자작나무를 심기로 했고 그 밖에 주목, 회양목, 전나무, 소나무, 밤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은행나무, 앵두나무, 무화과나무, 모과나무, 석류나무 등을 심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원하는 유실수는 앵두나무 하나이고 꽃나무로 천리향과 라일락 정도만 심고 싶다.


시누이는 몰래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무화과와 감나무 그리고 대추나무를 심고 말겠다고 했다.


무화과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고 감은 위가 없는 사람은 못 먹는 과일이다.  


대추는 너무 달려서 나중엔 처치곤란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누군가 정원수로는 주목이 좋다고 했다며 그 말만 되풀이했다.


나무도 취향이 제각각이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다음 글은 인테리어의 마지막인 커튼과 블라인드를 설치하고 그 후기를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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