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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Oct 31. 2016

집 짓기의 후기

거실에는 업다운 블라인드를 설치하기로 했다.


업다운이란 위아래로 블라인드를 올리고 내릴 수 있는 방식인데 가느다란 실 두 줄로 지지해서 설치한다.


위에서 내리면 실내가 답답한 느낌이 나니까 허리 정도의 높이로만 올려서 가려도 사생활이 보호되고 창의 위쪽은 시야가 트이므로 덜 답답하게 느껴지는 장점이 있다.



대신 암막커튼에게 기대하는 방한 효과는 다소 떨어지며 한지 느낌이 나는 부직포 블라인드라 햇빛이 비추면 은은한 맛이 있다.


부채가 접히듯이 주름진 형태로 요즘은 예전과 달리 두 겹으로 보강되어 나온다고 한다.


창문에 모두 공틀이 짜여 있어서 그 색깔에 맞춰 엷은 갈색으로 블라인드 색깔을 골랐다.



침실만 흰색으로 하고 다락과 거실은 모두 같은 색으로 통일했다.



커튼으로 할까, 블라인드로 할까 고민도 수없이 했으나 결국 편리성과 게으름이 이겼다.


계절 따라 커튼을 붙였다 뗐다 하는 것도 해보면 계절이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깜짝 놀라게 된다.


두 집 살림이 아니라면 상관없지만 될수록 손이 덜 가는 방향으로 해야 해서 뭐든지 최소한으로 살고 있다.


저녁이 되어 불을 켜면 집안이 훤하게 들여다 보여서 바닥에 깔았던 종이 두루마리를 거실 창에 길게 펼쳐서 가리고 새집에서 첫 밤을 보냈다.  


자고 나니 잔디에도, 잡초에도, 맨 땅에도 하얗게 서리가 앉아 있어서 밤새 겨울 요정이 다녀간 듯했다.



 

또한 KT 인터넷 기사가 우리 집까지 선을 연결하려면 길에서부터 끌어와야 해서 전주를 두 개나 세워야 한다고 했다.


전주 하나에 12만 원이라서 24만 원을 부담해야 가능하며 우리 집 뒤로 있는 다섯 집에서 함께 신청을 하면 무료로 전주를 세워줄 수 있다고만 하고 기사는 돌아가버렸다.


며칠 뒤 집전화를 신청하면 전주 하나를 무료로 설치해준다고 하여 3년 약정으로 집전화와 인터넷 티브이를 묶어서 신청했다.


집은 다 지어졌고 조경도 완성되었지만 손님을 초대하려면 준비해야 할 일이 많다.


남편은 12월 첫 주에 자기의 지인들을 초대해놓고 고기를 구울 방법을 연구하느라 마음이 무척 초조한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가 집을 지으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려 돌아다니던 작년 봄, 우리 동네의 새로 지어진 통나무집에 무작정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극세사로 만든 파자마 차림집주인 내외가 마당에 들어서는 우리를 보고 안으로 들어와서 구경하라며 커피와 과일까지 내주던 적이 있었다.


자기들도 문전박대를 많이 당해서 집 보러 오면 잘해주리라 결심한 바가 있었다니 우리 부부는 복도 참 많았다.


그렇게 연락처를 주고받았던 분인데 꼼꼼한 남편은 메모지에 적은 번호를 다행히 휴대폰에 저장해놓고 있어서 서둘러 전화를 드렸더니 일요일 오후에 우리 집으로 와주셨다.


그때는 참 고마웠다고 했더니 자기들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불러줘서 고맙다며 전원주택 삼 년차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주고 가셨다.


남편은 그분들에게서 고기 굽는 장비와 조경에 대한  설명(이라 쓰고 시행착오라 읽는다.)을 듣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가닥을 잡는 듯했다.


<내 집과 셋집의 차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집주인과 잠재 구매자들 때문에 불안했던 셋집이라면 이젠 마음을 턱 놓고 지내도 되는 것이 가장 다른 점이고 비가 오나 눈이 와도 나가 있을 데가 마땅치 않던 셋집에 비해 내 집에서는 앉아서도 밖을 훤히 볼 수 있고 눈비 올 때도 나가서 하염없이 앉아 있을 곳이 있다.


책 읽는 걸 즐긴다는 내 말을 듣고 창가에 책상을 짜준 설계 덕분에 음악을 틀어놓고 창가에 앉아 밖을 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고즈넉하게 좋은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직 책은 안 읽어봤다.


정리해야 할 짐이 왜 그렇게 많은지 옷장은 아직 손도 못 대고 부엌살림만 정리해놓고 왔다.


이젠 월세 사십 만원을 안 내도 된다.


일억 칠천만 원을 집 짓느라 쓰고는 월세 사십 만원이 절약된다고 좋아하는 게 살림하는 여자의 마음이다.


그래서 십 년짜리 장기 적금도 들고 안 사던 그릇도 사봤다.


남편이 달라졌다.


아침부터 추위를 무릅쓰고 집 주위를 돌아다니며 긴 호스를 정리하고 마당의 돌을 집어내는 적극적인 부지런함에 깜짝 놀랐다.


내가 시키지 않는 일은 먼저 하는 법이 없던 남편이었는데 내 집이 주는 만족감은 <내 남편이 달라졌어요.>에 제보라도 하고 싶게 만들었다.


전기요금을 자동납부로 신청했다.


집에서 느끼는  안정감이 기대보다 크다.


그것은 또한 셋집에서 20개월을 보냈기에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이제 길고 긴 겨울이 시작되었다.


이 겨울이 끝나고 새 집에서 보낼 봄의 잔치를 이어서 쓰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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