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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Nov 14. 2016

난 무슨 짓을 한 걸까?

새로 지은 멋진 집에서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주말을 보냈다. 엄마는 집을 둘러보시고는 "밭이 작고 마당이 너무 크다." "계단이 가팔라 다락에는 올라갈 생각도 안 난다." "집을 집 같지도 않게 지었다."라고 하시더니 결국 "전에 살던 집이 더 낫다."라는 결정타를 날리신다.



아직 정이 들기 전이라 새집은 어쩐지 서먹하고 높은 천장 덕에 아늑한 느낌은 덜하지만 산뜻하고 예쁘기만 한 집인데 엄마는 꼭 저렇게 사람 약 올리는 말씀만 골라서 하신다. 그렇지만 엄마는 언제나 당신은 객관적으로 말할 뿐이라고 하시고 괴팍한 아버지와 같이 사느라 저렇게 변하신 것을 아는 만큼 나는 남편에게 몰래 일러바칠지언정 마음에 두진 않는다. (하지만 글 첫머리부터 쓴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



엄마는 싱크대 값으로 오백 만원이나 주셨으면서도 이번에 또 기름값으로 쓰라며 오십만 원을 주셨다. 아버지는 올라오기 전에 백만 원을 내 계좌로 부치고 오셨다. 또한 남동생은 모니터 일체형 컴퓨터를 사 가지고 왔다. 친정 자랑을 하고 싶진 않지만 여동생은 집 짓는데 보태라고 천만 원을 주기도 했고 언니도 미국에서 다니러 온 지난달에 백만 원을 주고 갔다.



돈 들어갈 일이 많았는데 돈 들어오는 일도 많은 것이 집 짓는 일이다. 몇 달 사이에 큰돈이 거래되는 집 짓기를 할 때는 따로 전용 통장을 만들어서 입출금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 맞다. 나는 생활비 통장과 여분 통장 두 개를 사용하면서 관리했더니 뒤죽박죽이 되어 버려서 도무지 계산을 맞출 수가 없다. 그나마 지출 내역을 정리해두었기에 그걸 보면서 잔액을 맞추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내 생활비가 딸려 들어간 것 같은 의혹을 지울 수가 없다.



숫자에 어두운 내가 무슨 재주로 그 많은 돈을 깔끔하게 계산할 수 있겠느냔 말이지. 남편에게 잔액을 알려준다는 게 천 단위를 억 단위로 전달해서 남편은 내가 농담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액수가 커지니까 정신줄을 놓친 것인 줄은 모르고.



친정 부모님이 오시기로 한 금요일에는 오전에 목사님 심방이 있었다. 바쁜 일정에도 멀리까지 오셔서 예배해주시고 축도를 해주신 목사님과 부목사님, 교구장과 구역장에겐 지난 장날에 내가 직접 씻어 말려 짜 두었던 들기름병에다 손바느질로 옷을 해 입혀서 드렸다.   



한 말을 짜면 이렇게 여섯 병과 반 정도 나온다. 친정 엄마와 시누이에게도 한 병씩 드렸다.



부모님이 오시기를 기다려 이사떡을 주문했다. 동네에 드리는 떡은 지지난 주 마을 단위로 단풍놀이 가는 버스

에 실어드렸고 이번에 맞춘 팥시루떡은 가까이 사는 이웃집에 돌리는 걸로 한 말을 주문했다.



동네에 드리는 떡은 이장이 아침 여덟 시에 마을버스 종점에서 출발한다기에 그 시간에 맞춰서 떡집에 배달을 부탁해놨는데 버스도 사람도 없어서 벤치에다 떡 상자를 두고 간다는 떡집의 전화를 받고 어찌나 황당하던지! 시골의 시간 개념은 도시와는 달라서 여덟 시 반에 버스가 출발한다고 다시 동네 방송을 했다나 어쨌다나.



뜨끈한 팥시루떡은 떡집에서 찾아오기가 바쁘게 접시에 세 쪽씩 담아져 남편과 나는 이 집 저 집으로 부지런히 날랐다. 주말에만 오다 보니 평소에 인사도 없이 지내던 집에도 초인종을 눌러 저기 하얀 집에 오렌지 색 입힌 데서 왔다고 말하며 떡을 전해주니 다들 김장 김치며 은행알 등을 담아서 돌려주셨다.



이웃 중에서 지난여름에 새로 이사 온 분이 우리 집을 보고 싶다며 따라왔는데 집 안엔 아버지와 남편이 자고 있어서 들어가진 못하고 마당에서 얘기를 나누었다. 자신은 삼백 평쯤 되는 넓은 땅에서 조경과 농사를 하고 싶은 꿈이 있으나 지금은 작은 집에서 시작한다며 나더러 여기를 다 가꾸면 좋겠다고 하셔서 나는 이걸 다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바깥 분이 이런 데 관심이 있어서 집을 지었냐고 하길래 그것도 아니라고 남편은 더 게으르다고 했더니 그럼 뭐하러 집을 지었냐고 하셨다. 나는 "그러게요. 저도 지금 제가 무슨 짓을 벌인 건지 알 수가 없네요." 이런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새집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한데 친정부모님에겐 최선을 다해서 아침저녁 끼니를 차려드리려고 하니 어찌나 힘이 드는지 울고 싶어 졌다. 식탁은 서울의 우리 동네 공방에 주문해놓아서 삼 주나 있어야 제작이 된다 하니 주방에서 거실까지 동선이 멀어서 상 한 번 차리려면 다리가 꽤 아프다.


부엌과 거실까지 머나 먼 거리



여름 내내 창문을 열고 난방도 계속하면서 유해 냄새를 없앴으나 밀폐된 집안에선 아직도 가구 냄새가 나고 난방을 유지해서 습기에 취약하다는 ALC 블록을 말려야 하는 집은 건조해서 자고 나면 온몸이 말린 오징어가 되는 기분이다.



집 짓느라 신경을 안 쓴다고 해도 여름내 신경을 쓰고 최근엔 암 카페와 실연까지 하느라 마음을 시달린 데다 아직 다 채워지지 않은 인테리어에 집들이까지 시작되자 안 그래도 부실한 체력이 못 견디게 힘이 들었다. 어깨가 무겁고 기진맥진한 몸은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오늘 아침, 부산으로 가는 버스에 친정부모님을 태워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기숙사 생활을 하는 딸이 식료품을 잔뜩 배달시켜 놓고 그걸 택배로 부쳐달라 부탁하고는 학교로 돌아가고 없다. 쉴 틈도 없이 딸아이의 겨울 옷과 무거운 식료품 박스를 짐 싣는 카트에 실어서 우체국으로 향했다. 사거리 횡단보도를 힘겹게 카트를 끌며 발길을 옮기자니 속으로는 저절로 '부모고 자식이고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고!'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짐을 부치고나니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식탁은 현대식 집에 어울리는 철제 다리에 물푸레나무로 만든 6인용 테이블과 등받이가 있는 벤치로 주문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사과나무>공방에서 맞춤 제작을 했다.



그리고 캘리그라피 1세대인 손샘이 우리 집에 써주신 손글씨이다. 힘과 서정이 느껴지는 멋진 필체를 이젠 늘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함께 장식해주신 이 덩쿨 식물은 마삭인데 하얀 벽에 정점을 찍으며 멋은 이런 것이라는 걸 늘어뜨리며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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