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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Nov 22. 2016

시골 생활의 재미 - 솥단지 걸다.

서울에서  버스 정거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는 시누이 내외를 모시고 왔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가까이 있는 시누이를 먼저 초대하는 걸 잊어버릴 뻔했다. 새집이 헌 집 되기 전에 빨리 가자고 서둘러 모시고 오기는 했는데 역시 일 잘하는 시누이가 와야 척척 일이 진행된다. 집 주변을 둘러보며 할 일을 찾아서 해주는 시누이 덕분에 남편과 내가 쳐다만 보던 일을 모두 해결하고 이틀 밤을 주무시고 가셨다.


시골에 오면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솥단지 걸어서 불을 지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누이와 우리 부부가 열심히 돌과 자갈을 나를 땐 뒷짐 지고 가만히 계시던 시누이의 남편이 불 지피기에 흥미를 보일 줄은 몰랐다. 잘 마르지 않은 장작은 연기만 나고 타지 않는데 시누이의 남편이 쑥이며 쑥부쟁이 마른 것을 불쏘시개로 하여 능숙하게 불을 살려내셨다. 어릴 때 해보던 일이라서 그런지 무척 재미있어하면서 처음으로 시골 생활에 흥미를 보이셨다.


양은솥과 드럼통을 사서 뒤꼍에 대충 자리 잡고, 버려져 있는 나무를 톱으로 잘라 불을 지피려니 정작 성냥이나 라이터가 없어서 온 집안을 뒤진 끝에 케이크용 성냥이 하나 남은 걸 발견하여 부랴부랴 불씨가 꺼질까 난리법석을 떨며 불을 피우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화력 좋은 장작불에 삼십 분만 삶아도 돼지 목살 수육은 잘 익어서 딱히 대접할 것이 마땅치 않던 시골의 밥상이 푸짐해진 덕분에 시누이 보기가 덜 미안스러웠다. 손끝 빠른 시누이는 배추 한 포기로 겉절이를 해서 보쌈과 막걸리까지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시골에 오면 뭔가 색다른 재미를 드려야 할 것 같았는데 솥단지 걸어서 불 때는 것이야말로 재미와 음식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좋은 체험거리가 되었다. 그러자니 아궁이가 있어야 하겠고 지붕과 벽이 있는 아늑한 공간도 있어야 하니 시골 살림이 하나둘 씩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년에는 황토방을 지어 더 재미있는 시골생활을 꾸려볼 참이다.


집을 다 짓기까지 남편과 내가 실제로 땀 흘려 수고한 것이라고는 없이 뭔가 좀 섭섭하고 허전한 마음이 들어서 황토방과 울타리를 우리 손으로 한번 만들어볼까 궁리 중이다. 시누이의 말에 의하면 황토방을 손쉽게 만드는 방법 중의 하나가 조립식 집을 가져다 놓고 거기다 황토를 손수 바르면 된다는 거다. 지인 중 그렇게 만들어 본 사람이 있다면서 권하니 그 방법도 좋을 것 같다.


울타리 만들기는 브런치에서 검색만 해도 자세한 방법이 나온다. 울타리는 만만해 보여서 도전할 수 있을 것도 같기도 하다. 겨우내 울타리를 만들어서 경계도 하고 외부인이 쉽게 들어오는 것을 막아보는 게 어떨까 한다. 울타리나 대문은 원래 안 하려고 했는데 뒤꼍에 잘 말아서 둔 50미터 호스가 사라지는 일이 생기고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집안도 어느 정도 차단이 될 것 같아서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시늉이라도 해놓기로 했다.  


시누이가 준 백만 원으로 뭘 할까 고민이었는데 울타리를 만들면 남동생 집을 지켜주는 누나의 마음으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돌을 좀 날랐다고 그새 피로감을 호소하는 남편을 들어가 자라며 시누이는 끔찍하게도 동생을 아낀다. 나는 농담처럼 "남편이 아니라 내가 암에 걸린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남편이 암에 걸렸더라면 형님에게 시달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라고 우스개 섞어서 말하니 시누이는 바닥에 구르면서 웃었다. 내 딴에는 뼈 있는 농담이라고 했는데 다행히 시누이는 내 말에 트집을 잡지는 않았다. 시누이는 집이 구석구석 마음에 든다며 무척이나 좋아하면서 집에 초대해줘서 고맙다고도 하니 요즘 우리 시누이는 나에게 너무 깍듯하게 대한다. 이제는 서로 거리를 지키며 적당히 잘 지내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아서 싫지 않다. 가끔 나는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밟으며 깐족거리기까지 한다.


이번 주말까지 나의 지인들을 불러다 집들이를 끝내고 나면 다음 달부터는 남편의 집들이가 시작된다. 집이 완성되기가 무섭게 손님 초대가 줄을 이으니 집 짓고 나면 폭삭 늙는다는 말이 이래서 생긴 듯하다. 남편의 지인들이 올 때는 공식적으로 환자인 나는 서울에 있을 것이다. 대신 김장을 해서 남편 손에 들려 보내는 걸로 안주인의 도리를 다 하기로 했다. 남편이 손님맞이에 하도 걱정을 해대어 듣다 못한 내가 김장 날짜를 맞추는 걸로 타협을 했다.


집 짓기에 관한 전문적인 글은 브런치에서 자주 찾을 수 있다. 나는 집 짓기의 뒷얘기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곧 남편의 도움을 받아 집에 관한 정확한 수치와 정보를 여기에 공개할 것이다. 남편은 또한 집을 다 짓고 나니 더 이상 집이 완성되어 가는 기대가 없어지고 아쉬운 부분만 자꾸 생각이 나서 한동안 힘들었다고 한다. 나 역시 평생의 꿈이 이루어지고 나니 허탈한 마음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지인들이 와서 집에 관해 한 마디씩 평을 하면 좋든 나쁘든 예민하게 와 닿기도 하고 앞으로 더 손 볼 일이 많은 것에 막막하기도 했다. 봄이 되면 나무와 꽃을 심고 잡초와 잔디를 관리하려면 적잖은 수고가 들어야 할 것 같아서 미리 겁이 나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남편이나 나나 왕성한 체력과는 거리가 있어서 뭐든지 조금씩만 하자는 주의인데 일 욕심이 많은 시누이는 올 때마다 의욕을 보여서 괜히 따라 하다가 힘들 때가 많다. 남편은 무거운 돌 좀 들었다고 벌써 엄살이 늘어졌다.


내가 직접 황토방을 지을 거라는 말에 남편은 바로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는 말로 나의 전투 의지를 불태우게 해줬는데 내년 봄에 남편의 손에 장을 지져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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