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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Dec 22. 2015

암에 안 걸리는 법

철저하게 비전문적이나 꽤 실용적인 비법

암환자가 되고 나서야 암에 안 걸리는 법을 알게 되다니!


이것은 삼 년째 암환자로 살고 있으며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네이버 암 카페의 회원내 경험에서  순전히 우러난 비법임을 밝히는 바이다.


그것은 생각보다 쉽고 실천하기는 훨씬 어려운 방법이다.


싫을 땐 싫다고 하고 안 하고 싶을 땐 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생활하면서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느냐 답답한 소리라고 하겠지만 적어도 스트레스 관리에 실패해서 암에 걸린 사람에게는 중요한 문제이다.


직장생활을 한 번도 안 해본 전업주부라도 피해갈 수 없는 덫이다.  (직장 상사의 열 배쯤 되는 스트레스를 주는 시월드와 천국과 지옥을 수시로 오가는 급행열차인 육아의 고충은 당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암은 외부의 바이러스가 들어와 일으킨 질병이 아니라 내  몸속의 세포가 변이를 일으켜 만들어낸 것이다.


의사들도 못 밝힌 암의 원인을 암환자가 된 처지에 언급한다는 것이  주제넘은 일이긴 하나 어떤 것보다 뛰어난 스승이 경험이라는 걸 떠올려 보면 암경험자가 내린 결론에 한 번쯤 귀기울일 필요는 있다고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상모 돌리는 중이다.


나는 암에 걸리고 나서 카페를 통해 암에 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암에 걸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나를 깨달았다.  


어떤 학설에 의하면 암에 걸리는 원인은 대부분 식생활의 문제라고도 한다.


면 빵떡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하고 끝없는 식탐으로 늘 과식을 했던 나는 벌써 그 고비에서 자빠졌다.


천성이 소심하고 나약한데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자란 성장기에는 극도로 위축된 자아를 가졌기에  대인관계에서 늘 남의 눈치를 살피고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며 살았다.


그런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 직장 상사는 애매한 부탁을 할 사람이 없을 땐 나를 가장 먼저 찾았다.


결혼해서는 진격의 시댁 식구 때문에 또 전전긍긍 고달픈 시집살이를 해야만 했다.


암에 걸릴 땐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한데 나에겐 남편의 치킨집 개업이 그것이었다.


건설회사 현장소장으로 잘 나가던 남편은 남보다 일찍 퇴직하여 카페형 치킨 프랜차이즈가 돌풍을 일으키던 몇 년 전의  그때, 돈은 벌어도 쓸 시간이 없을 것이라던 그 죽일 놈의 영업사원에게 홀랑 넘어가고 말았다.


그런 남편을 무척 사랑했던 나는  무단결근으로 애를 먹이는 실장을 대신해서 손이 느린 남편을 도와 육체적으로는 내 인생 최고로 힘들었던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장렬하게 전사... 하지는 못하고 대신 암에 걸렸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그 흔한 말이 사실이었다.


친구들이 찾아와 부탁하는 보험을 거절하지 못해 들어두었던 것이 치킨 가게의 빚을 갚게 해주었고 양평에 손바닥한 땅도 다.


언제 그만두나 노래를 불렀던 직장생활도 었고 소원하던 전원생활을 하면서 "제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요?" 부르짖느라 목이 쉴 지경이었다.


위를 통째로 들어내는 수술도 무섭지만 전이와 재발도 늘 두려웠기에 나는 카페에 글도 쓰면서 암 공부를 틈틈이 하였다.


 하나가 청주 꽃마을의 '면역력 증강 프로그램' 참가였는데 신부님의 강론을 통해 완치의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바로 사랑이었다.


우주를 움직이는 에너지가 사랑이고 인체가 소우주라면 내 속에서 키운 암덩어리를 없애는 방법은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놀라운 사랑 만이 기적을 만들 수 있다.


못나 빠진 나 자신이 미워서 죽을 지경이었는데 이젠 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던 아버지를 껴안고 화했다.


어쩌면 그렇게 늘 기쁘고 벅차고 황홀한 지 거기엔 신앙의 힘이 가장 크긴 했지만 항상 싱글벙글 웃고 다니는 내가 나도 신기했다.(혹시 위가 아니라 뇌를 수술한 건 아닐까?)


이렇게 마음이 첫째고 꾸준한 관리가 두 번째여서 완치한 사람들의 경우엔 눈물겨운 노력이 뒤따른다.


암환자들은 직화구이, 짜장면, 삼겹살, 튀김, 차가운 음식과 가공식품을 되도록 먹지 않는다.


브로콜리, 버섯, 파프리카를 몇 수레분을 먹었다는 분도 있고 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아닌 걸쭉한 야채수프를 하루도 안 거르고 몇 년씩 드시는 분도 있다.


나는 몸에 이로운 음식을 가려서 먹고 한두시간씩 걸으며 푹 자고 무엇보다 조금이라도 내키지 않는 일은 NO라고 말하면서 살게 되었다.


언제든 수틀리면 길게 칼자국난 배를 까보이며 "배 째!"를 큰 소리로 외칠 수  있는 배짱이 생긴 것도 예전의 나와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첫 아이를 가졌을 때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가 무서우면서도 그 카리스마가 부러워 '부디 할머니만  닮아라.'라고 태교를 했더니 어머니 돌아가신 지 십 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나는  딸에게 아직까지 시집살이 중이다.


이 글의 제목을 불러줬더니 담박에 "제 멋대로 사는 거 아냐?"라고 바로 맞히는 딸


역시 내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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