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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Dec 08. 2016

산낙지 먹고 힘내서 뭐할까?



오리백숙, 추어탕, 바다 장어, 전복 등이 내가 위암 수술 후에 몸을 회복하면서 가끔 먹었던 보양식이다.


3호선 오금역 근처인 우리 집에서 지척에 꽤 유명한 낙지 맛집이 있는데도 십여 년을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가 기운이 부쩍 달리는 요즘 처음으로 먹어 보았다.


싱싱한 산낙지로 만든 낙지볶음에 이어 연포탕을 이틀 연거푸 먹었더니 기분 탓인가 어쩐지 몸에 원기가 돌아오는 것 같다.   


일인당 낙지 두 마리씩 통째로 들어있어서 작게 잘라 탱글탱글한 식감을 즐기며 열심히 씹어 삼켰다.


먹어본 경험에 의하면 어떤 보양식보다 원기 회복에는 산낙지가 최고인 듯하다.


일 인분에 삼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저녁에는 예약 없이 못 먹는 곳이라 들었는데 점심 때는 한가했고 요즘 경기가 나빠서인지 예전만큼 붐비지 않는 것 같다.


한동안 기운이 없더니 몸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회복세로 돌아섰는지 입맛이 당기고 음식이 맛있게 느껴진다.


꼬막무침, 시금치나물, 콩나물과 무나물, 파래무침, 얼갈이 된장찌개, 전복 미역국, 콩잎 장아찌, 무생채, 두부조림, 버섯전골 이런 것들로 요즘 밥상을 채우는데 채식 위주의 식단에 불만이 있는 둘째가 요구할 때만 고기를 사서 요리를 해주곤 한다.


하지만 친정 엄마는 내가 집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는 것에 항상 걱정을 하시며 "네가 뭐 먹는 게 있어야지."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먹성이 좋은 편이라 잘 먹기는 하는데 따로 찾아서 먹는 게 없으니 늙으신 엄마의 딸 걱정에 죄송할 따름이다.


골고루 잘 먹고 운동도 빠뜨리지 않고 건강을 잘 챙겨서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꾸준히 해야 하는 것이라 쉽지 않다.


내가 산낙지를 찾아 먹으며 기력을 보충하는 이유는 다음 주에 친정 엄마의 김장도 도와드리고 둘째를 낳은 사촌 동생의 뒷바라지도 해주고 허리 시술을 받을 예정인 아버지 간병도 거들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게 아침상을 꼬박꼬박 차려주기를 바라면서도 친정 일을 보러 간다고 하면 환자가 돼서 뭘 하느냐고 공연히 목소리를 높인다.


자기가 필요할 땐 정상이고 집을 나가면 환자가 되는 내 신세


앞으로 일 년 뒤면 오 년 완치를 바라보고 있는데 암에 걸려 정지되었던 내 인생의 브레이크를 풀어서 다시 나아 가려고 는 방향을 찾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의 책 제목처럼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요즘 유시민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저 책은 도서관에 붙어 있는 날이 없다.)


지금 투병하는 암 카페의 회원들에겐 부러운 고민이 될 것이겠지만 어영부영 세월은 잘도 흘러 나는 어느새 졸업을 기다리게 되었다.  


하지만 쉬 지치는 체력에다 정신줄 놓은 지 한참 된 머리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게 함정이다.


그렇다고 살림만 하면서 마냥 지내기엔 직장 생활로 길러진 근성이 있어서 뭔가 도전하고 싶은 욕심은 아직 남아있는 것도 문제이다.     


티브이에 가끔 이것으로 암을 정복(?)했다는 온갖 정보와 인터뷰가 나온다.


'나는 이렇게 암을 이겨냈다'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로는 암을 이겨내서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덤으로 얻었다는 그 삶을 어떤 가치로 채우면서 살 건지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하게 되며 묻게 된다.


 사람은 길가에 핀 들풀이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길가에 피어 있는 들꽃은 그 자체 만으로도 소중하다.


새는 날려주고

씨는 뿌려주고

꽃잎은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라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꽃잎 따위가 아니기에 산낙지를 먹고 힘을 내야 한다.


오금역 근처에 있는 낙지전문점 이름은 독천낙지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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