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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Feb 28. 2017

마침내 봄이로구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마침내 오고야 말았다. 지루한 겨울을 버틴 끝에 보드랍게 뺨에 스치는 바람결을 느낄 수 있었다.  


예쁜 색깔의 꽃이 피고 여린 새순이 나며 무엇보다 농사를 시작할 수 있는 봄이라서 이렇게 목을 빼고 기다리는 중이다.


텃밭에서 갓 딴 채소의 아삭한 맛을 본 뒤로는 아무런 생명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 가공 식품을 멀리하게 되었다.  


물론 가끔 과자를 집어먹기는 하지만 봄철의 채소들은 정말 나의 혀를 춤추게 한다.


쑥과 냉이, 머위와 달래. 뽕잎과 홑잎나물을 먹게 될 것이고 곧 쌈채소들이 뒤를 이을 것이다.


오늘은 남편의 쉰여섯 번째 생일이다.


미역국이 있는 생일상을 차려줘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며칠 전부터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말이 미역국이나 끓인다지만 달랑 밥과 미역국만 차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봄을 기다리느라 지친 나머지 살림에도 의욕을 잃은 지 오래여서 시장을 보고 다듬어 요리하는 일이 벅차게 여겨지는 요즘이라 매년 차려왔던 남편의 생일상이 어쩐지 무척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결국 생일은 다가왔고 하는 수 없이 둘째와 외출을 했다.


백화점에서 오래된 남편의 면도기를 대신해 줄 새 면도기를 사고 갈비와 잡채를 하기 위한 시장을 봤다.


한우 갈비찜은 지난 설에 먹었으니 이번엔 호주산 LA갈비구이로 준비했고 오래 살라고 잡채를 하기로 했다.


미역국은 냉동실에 남아 있던 전복 몇 마리를 넣어서 끓이면 되니까 장보기는 이걸로 간단하게 끝냈다.


아침 밥상으로 차려주려니 어제 밤늦게까지 장만해놓고 찹쌀에 삶은 팥을 넣어 예약 취사를 눌러 놓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마지못해 귀찮은 마음으로 요리를 해서 그런지 고기는 뻣뻣했고 잡채는 희여멀건했지만 나의 특기가 그나마 간은 맞추는 것이어서 찰밥과 미역국까지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상차림을 보면 감탄할 줄은 알아도 내 손으로 차려내는 건 아득한 일이라 요리 열정이 있는 사람이 요새는 좀 부럽다.


사람은 평생 먹고살아야 하는 존재이고 부엌일이란 은퇴가 없는 법이니 몸이 좀 살만하면 뭘 만들어 먹을까부터 궁리하는 주변의 주부들을 보면 신기하고 부러울 뿐이다.


나도 내 입으로 들어오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차려내길 좋아하는 재주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식구들도 덕분에 끼니마다 잘 차려진 맛난 식사를 할 수 있을 테고


어제저녁은 아름다운 동행 카페의 다락방 기도회가 있는 날이어서 회원인 마리아 님의 차를 타고 하남에 있는 클럽하우스에 갔다.


<KBS 다큐 앎> 방송에 출연했던 두나미스님과 마카다미아님이 병원에서 출발해 오신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두 분은 출연료에다 더 보태서 디지털 피아노를 클럽하우스에 기증하셨다.


그동안 반주 없이 찬송을 하다가 어제는 마카다미아님이 반주를 하셔서 은혜로운 찬송을 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마음과 유익한 재능이 합해져서 어느 때보다 좋은 시간을 가지고 돌아왔다.


요리를 잘 해서 늘 맛깔난 음식 사진을 카페에 올려 입맛 잃은 암환자들의 식욕을 돋우는데 한몫을 하는 마리아 님과 바리스타 자격증에 냅킨아트까지 회원들에게 재능 기부를 하시는 날빛님을 보니 특출한 재능이 있는 분이 참으로 부럽기만 했다.


클럽하우스를 운영하는 카페 매니저인 야아츠님마저 셰프 못지않은 솜씨로 음식을 차려내어 늘 감탄을 나오게 하니 이래저래 쓸 데 있는 재주라고는 없이 잘 떠드는 수다 밖엔 할 줄 모르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각자 기도 제목을 말하는 순서에선 양평의 시골집이 암환자들의 쉼터로 잘 사용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사실 뭘 차려서 잘 먹일 자신은 없다.


미역국 한 그릇 얻어먹으려고 남편은 동료들이나 누나에게서 받은 축하금까지 나에게 건네면서 비위를 맞추었기에 봉투 받은 죄로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생일상으로 차려주었을 뿐인 나는 솜씨도 염치도 없을 뿐이다.


하지만 봄이다.




첫째의 발상으로 급히 만든 과일 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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