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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r 02. 2017

밥 밥 밥

손위 시누이가 노후를 보내기 위한 방법으로 살던 아파트를 팔아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상가 주택을 사려고 알아보고 있다.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팔고 은행 대출을 약간 더하면 3층 정도의 작은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시누이는 세 군데를 봤다면서 우리 부부도 한번 둘러보기를 원해 삼일절이던 어제 오후에 우리 동네 근처의 세 곳을 다녀왔다.


처음 본 곳은 약간 외곽에 있는 3층 주택으로 교통편이 좀 불편하고 상가 없이 주택 임대 수익만 기대할 수 있는 마당 딸린 전원주택 같은 곳이었다.


두 번 째는 동네의 길가에 있는 상가인데 일 층에는 가게가 세 곳이 있고 지은 지 삼십 년이 되어 타일로 지은 외관이 낡아 보였다.


마지막으로 본 상가 주택이 입지 조건도 나쁘지 않고 아담해서 무엇보다 예산에 가장 근접한 곳이라 1순위로 뽑혔다.


하지만 역시 삼십 년이 지나 낡았고 주차 공간도 부족하니 대단지 아파트에서만 살던 시누이가 저런 곳에서 어찌 지낼 수 있을지, 한 달에 이백 여만원의 월세 수익을 얻기 위해 쾌적한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 머리 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남편은 시누이에게 서둘지 말고 급매가 나올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서 기회를 노리라고 말했지만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하는 형님에게 그건 너무 힘든 요구인 것 같았다.


예산에 맞추려니 낡고 좁은 상가 주택을 선택해야 하고, 촘촘하게 건물이 있는 길가의 집을 둘러보니 주변 환경은 아파트보다 많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시누이가 나더러 선택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재산을 몽땅 정리해서 투자하는 것이라 생각만 해도 머리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고작 몇 군데 집을 둘러보고 조언을 해 주었을 뿐인데 콩나물 국밥으로 저녁까지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누이 부부와 헤어지고 둘만 남자 내 입에서는 저절로 이런 말이 나왔다.


"노후 대비라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네. 아이고! 골치 아파. 여보! 당신은 연금 받을 마누라가 있어서 다행인 줄 아슈."


남편은 그 연금이라는 게 십 년이나 기다려야 나오는 것이지만 자지러지는 시늉을 하며 "그러면요, 그러면요." 이렇게 장단을 맞춘다.


나는 한술 더 떠서 "당신이 나보다 오래 살 건데 나 죽고 나서도 조금이지만 연금이 나오니 그 또한 얼마나 좋아?" 확실하게 공치사를 던졌다.


남편의 대답은 " 무슨 소리야? 당신이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지. 그래야 남편 밥 안 하고 편안하게 몇 년 더 살 거 아니야?"


내가 그동안 밥 때문에 남편을 너무 구박했나 보다.


국 없이는 밥 못 먹는다고, 새로 한 반찬만 좋아한다고, 맛있는 건 귀신같이 안다고 입만 열면 남편 흉을 보고 다녔는데 앞으로는 미식가인 남편의 입맛에 대해 더 이상 탓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밥을 새로 짓고 담백한 국을 끓이고 세 가지 정도의 반찬으로 정갈하게 밥상을 차리는 이유는 남편이 나 대신 생활비를 벌어오기 때문이다.


월요일이 되어도 출근하지 않고 세수도 안 한 얼굴로 빈둥댈 수 있는 내 처지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는 직장 생활 이십 년 넘게 해본 경험으로 아침마다 새록새록 느낄 수 있다.


직장 다닐 때는 환절기마다 일주일씩 몸살감기로 고생을 하고, 오한이 나서 떨리는 몸으로도 머리를 감고 출근해야 했던 악몽 같은 때도 있었다.


과중한 업무로 우울증이 와서 두세 달을 무기력하게 보내기도 했고 스트레스로 폭식을 하고 내 삶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은 힘든 일이 없고 신경 쓸 데도 없는데 아침저녁으로 남편 밥 그거 차린다고 귀찮아하니 편하고자 하는 사람 마음이 이다지도 간사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고맙게도 남편이 오늘 저녁은 밥을 먹고 들어온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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