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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r 20. 2017

세 번째 봄

첫 쑥과 냉이를 캐서 쑥국과 냉이무침을 먹었다.


봄 내음을 맡으려고 겨울 동안 기다렸는데 양평에서 맞이한 세 번째 봄이다 보니 기대했던 것만큼 그렇게 큰 감흥은 없었다는 게 더 놀라웠다.


이웃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양평으로 이사 와서 삼 년 동안 이 동네 나물을 고개가 꺾어지도록 자루로 캐다 날랐는데 삼 년 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였나


들깨 갈아 넣고 콩가루 뿌려 끓인 쑥국도 그저 그랬고 고추장으로 달짝하게 무친 냉이도 작년 같은 감동은 없다.


나보다 봄나물을 좋아하는 시누이는 지천으로 있는 냉이를 보자 흥분한 나머지 정신없이 호미질을 하며 금세 수북하게 캐고 쑥은 아직 어려서 양지바른 곳에 있는 것만 캤다.


나물도 캐야지, 새로 만든 밭에 거름도 뒤집어야지, 꽃밭도 손질해둬야 해서 시누이와 남편은 온종일 집 밖에서 일하고 나는 주위를 맴돌며 아무 한 것이 없어도 힘이 들어서 오후엔 낮잠을 두 시간씩 자야 했다.


진디 밭새싹이 올라올 때 물을 줘야 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가 이웃의 말을 듣고서야 마당의 잔디에 물을 주려고 서울로 가다가 도로 돌아왔다.


바짝 마른 잔디에 호스로 이리저리 물을 뿌려주니 그제야 갈증이 가신 듯한 모습에 "물 줬으니 이제 잘 자라야 해!"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시누이는 이제야 물을 줘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지 라며 언제나 나를 가르치려 든다.


그래도 시누이가 아니면 우리 남편은 혼자서 일할 엄두를 못 내니 친정 엄마가 이것도 밭이냐고 비웃던 손바닥만 한 밭도 시누이가 와야만 체력이 약한 남편이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다.


시누이의 고향 선배가 몇 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시골에서 지내고 싶다고 한 소원을 그 집 남편이 들어주지 않아서 죽기 얼마 전에야 잠깐 지내다 간 것이 시누이는 마음에 걸려서 우리 남편에게 어서 집을 지으라며 독촉을 했다고 이제야 얘기를 했다.


또 시누이는 살아보니 돈이라는 것이 원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서 채워지기도 하는 것이니 돈에 너무 얽매일 일도 아니더라는 말도 했다.


결정적으로 우리 시누이가 변하게 된 이유는 본인이 말한 것처럼 평생 남에게 "너 왜 그랬니?"라는 말을 들어보지 않고 살다가 며느리에게 말도 못 하면서 냉가슴을 앓고 보니 속 아픈 세월을 견디는 동안 인간미를 새록새록 풍기게 되었다.  


남동생에게 뭐든 먼저 먹으라고 권하고, 가까이 있는 남동생보다 멀리 앉은 내게 심부름을 시키는 등 차별은 여전했지만 나 역시 우리 남동생에게 그러니까 별로 섭섭하진 않았다.   


용문의 추위는 매서워서 겨울에는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춥기만 하더니 봄이 되자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던 길에도 사람들이 다니고 우리 집 건너 편의 농원에 묘목을 사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이 모자라는 농원에서 우리 집의 지하수를 끌어다 쓰는 대신 필요한 묘목을 싸게 주겠다는 반가운 제안을 받았다.


모자라는 체력이지만 흙을 만지며 농작물을 키울 땐 세상 부귀영화가 부럽지 않고 흙 묻은 작업복이 어떤 옷보다도 편하고 좋은 걸 보니 나는 딱 시골 체질인 듯싶다.


용두리 짬뽕으로 유명한 청운면 용두리에 대지 삼십 평에 건평 열두 평의 오천만 원짜리 황토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이웃의 말을 듣고 시누이는 구경이라도 가보자 했으나 일이 바쁜 탓에 접고 말았는데 나는 나대로 암 카페의 회원들 중에 시골 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필요할지도 몰라서 덩달아 들썩거리다가 말았다.  


4년 검진 결과는 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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