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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Mar 18. 2019

부모가 다 맞다는 확신과 자만심

“엄마가 화났다”를 읽고

그동안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최고의 교육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화가 나면 ‘지금 너의 이러이러한 행동을 엄마가 한다면 너의 기분은 어떨까?’ 등으로 아이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었고, 화를 참기 위해 엄마의 감정을 길게 늘이면서 설명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화가 나는 내 감정을 풀어서 표현하다 보면, 자연스레 나의 화가 가라앉는 효과가 발생하기도 했다. 내 몸에서는 사리가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화 안내는 것의 부작용이라고 생각되는 면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화를 내는 것도 혼내는 것도 아닌데, 목소리에 조금만 힘이 들어가도 아이는 엄마가 자기를 혼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눈물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생겼기 때문이다. 선생님이나 엄마가 알려주는 충고도 혼났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의 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시기에 아이의 고집도 심해지자, 나의 잔소리는 눈에 띄게 늘어갔다. 예전과는 다른 양육 방식에 아이는 혼란스러워하는 듯했고, 나 스스로도 힘들었다. 아이에게 화내는 횟수가 많아지는 것에 대한 고민을 나누던 중, 책 한 권을 추천받았다.


“엄마가 화났다” - 최숙희 글, 그림 / 책읽는곰


중고 서점에서 책을 산 뒤, 아이가 하원 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엄마가 책을 샀는데 함께 읽어보자며 분위기를 잡고 앉았다.


주인공 산이는 자장면을 너무 좋아하는데 여기저기 묻히고 먹자, 엄마는 가만히 얌전히 먹으라며 혼낸다. 지저분해진 얼굴을 씻기 위해 비누를 갖고 놀다가 거품 놀이가 시작되자, 엄마는 목욕탕에서 놀면 위험하다며 소리를 버럭 낸다. 가만히 앉아서 그림을 그리려다 종이가 너무 작아 벽에도 바닥에도 낙서가 시작되자, 엄마는 집이 돼지우리 같다며 불같이 화를 낸다.


여기까지 읽으며 아이에게 한 마디 했다. “어휴, 엄마가 얼마나 화가 났을까?” 

내가 아이에게 화를 내는 이유를 정당화하기 위한 쐐기 박기였다. 엄마가 화가 나는 이유를 아이에게 공감받고자 했던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 페이지부터 이야기가 당황스럽게 흘러갔다. 


산이는 엄마의 계속되는 화에, 가슴이 뛰고 무섭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라져 버렸다. 


이때였다. 

나는 왜 이 책을 미리 읽어보지도 않고 아이에게 같이 읽자며 들이댔을까.

나는 왜 이 책이 당연히 내 편일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을까.


엄마는 산이를 찾아 나섰다. 자장면 성 창문에는 아이의 그림자가 보인다. 엄마가 산이의 이름을 부르지만, 아이는 산이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런데요, 우리 엄마는 나만 보면 가만히 좀 있으래요. 엄마가 가만히 있으라고 할 때마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요.”


거품 성에서 만난 아이도 산이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요, 우리 엄마는 나한테 자꾸 소리를 질러요. 엄마가 버럭 소리를 지를 때마다 내 거품이 툭툭 터져 버려요. 이러다 내가 점점 작아질 것 같아요.”


그림 언덕에서 만난 아이도 산이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요, 우리 엄마는 걸핏하면 나 때문에 못 살겠대요. 나는 엄마가 정말 정말 좋은데…….”


책 속 엄마가 쓰러지자 나도 쓰러질 것 같았다. 나도 주저앉아 울 것 같았다. 당당하게 책을 읽어 내려가던 나의 목소리는, 자꾸만 아이의 표정을 살피며 작아졌다.


그런데 아이는 “거봐, 잘못은 엄마가 한 거야~” 류의 당당함을 보이지 않았다, 고맙게도. 

산이와 엄마가 꼭 안으며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림에서는, 나도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동화책은 늘 아이에게 교훈을 준다고 믿었고, 그 교훈의 큰 틀은 “엄마, 아빠 말을 잘 들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가 없으면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다는 ‘상황’ 탓에, 엄마 아빠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다그치는 것이 아이에게 효과가 있을 수는 있겠다. 그런데 아이의 입장이라면 가끔은 궁금할 것 같기도 하다. 왜 가만히, 얌전히, 조용히 있어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어렸을 때 그랬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 아빠 말을 무조건 잘 들어야 잘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느낌으로 충분히 안다. 엄마가 뭔가 힘들고 귀찮아서 이렇게 말하는 것인지, 진짜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인지 말이다.


부모가 다 맞다는 확신과 자만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이런 엄마가 싫어!’라며 어린 시절을 지나왔으면서, 왜 똑같은 모습으로 아이를 대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왜 화가 나도 그 감정을 숨기며 아이를 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을까. 그 ‘잘못된’ 노력이, 지금 나와 아이가 불필요했을지도 모르는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부모는 다 맞지 않다. 그리고 아이가 맞을 수도 있다. 그저, 자기가 무조건 맞다는 자만심으로 상대방을 대하지 않는다면, 화를 낼 일도 소리를 칠 일도 훨씬 줄어들 것 같다. 기본적으로 화를 낸다는 건 “나는 옳고 너는 틀렸는데, 왜 옳은 대로 하지 않느냐”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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