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가장 쉬웠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아니었지만, 뒤돌아보니 그랬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대학’이라는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전공이라는 개인적 관심사도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오직 ‘대학’ 그중에서도 ‘좋은 대학’ 또 그중에서도 ‘취업할 때 유리한 대학’을 가면 공부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었다. 어떠한 대학에 진학했는지의 차이일 뿐, 대학만 가면 공부의 결과물을 가진 것과 다름없었다.
물론, 공부가 어렵기는 했다. 당장 외국인을 만나 말할 일이 없는데 현실감 없는 영어 공부를 왜 해야만 하는지 짜증이 났다. 덧셈 뺄셈 말고는 실생활에서 언제 쓰이는지 모르겠는 수학은 그저 누가 누가 머리가 좋은가 내기를 하기 위한 수단 같았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던 물리는 그냥 문제랑 답을 외웠다. 물리와 관련된 모든 질문에 대한 이유는 알고 싶어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답만 외웠다. 말 그대로 ‘어디다 써먹으려고’ 공부하는 것인지 몰랐다. 쓸데없는 공부를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가질 수 있었으니, 그 시절에는 공부가 쉬웠다고 말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 이후의 공부는 대학 진학 전과는 매우 달랐다. 대학에 진학한 이후부터 사회생활을 하고 부모가 된 지금까지 공부는 계속되었지만, 좀처럼 결과물을 가질 수 없었다. 모두가 대학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졌기에 공부 방법도 같았던 때와는 달리, 모두 각자 목표를 세워야 했고 각자 공부해야만 했다. 그런데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토익 공부를 했지만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자기 계발서를 읽었지만 눈에 띄는 성장을 하지 못했고, 말하기 모임에 참석했지만 말을 잘하지 못했다. 공부가 필요해서 공부를 했지만 공부의 결과물은 좀처럼 나에게 오지 않았다.
왜 공부의 결과물이 나에게 오지 않는지, 도대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점점 공부가 하기 싫어졌다.
그렇게 멀어진 공부를 절실하게 다시 해야만 했던 이유는 단 하나, 내가 부모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공부를 할 줄 모르면서,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결과물이 나오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때문에 씽큐베이션 모임의 두 번째 선정 도서는, 모임이 아니었어도 꼭 정독해봐야 하는 책이었다.
<완벽한 공부법 _ 고영성. 신영준 지음>
이 두꺼운 책에서 저자들은 14가지의 완벽한 공부법을 제시한다.
1. 믿음: 공부는 믿는 대로 된다 2. 메타인지: 나를 모르면 공부도 없다 3. 기억: 기억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4. 목표: 성공적인 목표 설정은 따로 있다 5. 동기: 내게 자유를 달라 6. 노력: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7. 감정: 감정은 공부의 안내자다 8. 사회성: 함께할 때 똑똑해진다 9. 몸: 몸은 공부의 길을 안다 10. 환경: 공부 효율은 환경 따라 달라진다 11. 창의성: 창의성은 지능이 아니라 태도다 12. 독서: 독서는 모든 공부의 기초다 13. 영어: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배우자 14. 일: 실천처럼 공부하면 실전에서 통한다
왜 이제까지 공부 방법을 점검해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지금까지 공부의 결과물을 갖지 못했던 이유는, 공부하는 '척'만 했지,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냉정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시간 낭비를 한 것이 맞았다. 그런데내가 이 모든 사항을 다 알고 난 상태에서 공부라는 것을 시작했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를 생각하고 한탄하기에는, 바로 옆에 내 아이가 있다. 일단 나의 공부는 차치하더라도 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한 이 14가지라는 방법 중 가장 시급하게 아이에게 적용할 사항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다섯 번째 항목인 ‘동기’다.
주변을 둘러보면 번 아웃에 걸릴까 걱정되는 상황을 벌써부터 목격하는 중이다. 이것저것 시키는 부모 중에서 아이를 싫어하거나 괴롭히려 작정하는 부모는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정말이지, 사랑하는 마음에서 아이에게 권하는 것임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곤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입을 보면 가슴이 쓰리다. 놀이터에서 몇 시간을 뛰어놀아도 피곤하지 않은 아이들이 학원에 가서 피곤한 이유는,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 어렵다. 물론, 나도 아이에게 시키고 싶은 것이 많다. 악기도 운동도 다 잘하는 아이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옳은 방법일지는 모르겠으나, 많이 뛰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빠와 공 놀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었다. 엄마 아빠의 강렬한 리액션이 몇 달 동안 지속되자, 아이가 먼저 말했다. 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이다. 방과 후 수업으로 축구를 하고 온 날이면 졸린 기색이 역력하지만, 본인이 재미있어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 그런지 무엇을 배웠는지 재연하는 모습은 늘 진지하다.
종종 그림 칭찬을 받더니만, 그림을 잘 그리면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아이에게 몇 가지 직업을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은 본인 스스로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는 것에 감사하다. 악기를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 이번 어린이날을 위해 어린이 오케스트라 공연을 예매했다. 1년 정도 몇 차례 악기 공연에 노출시켜주고 본인 입에서 배우고 싶다는 말이 나올 때를 기다려 볼 계획이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환경 즉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본인이 하고 싶다는 동기를 받아 배움을 선택하게 하고자 한다.
아직 어리기만 한 아이에게, 공부의 결과물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동기 부여를 통해 차곡차곡 쌓아주고 싶다. 공부의 결과물이 쌓여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고 싶다. 그리고 공부의 결과물을 실생활에 적용해서 내 삶이 풍부해지는 경험을 갖게 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아이에게 롤모델이 되고자 하는 동기로 내가 좋아서 선택한 독서를 하고 있다. 나 역시 공부의 결과물을 실생활에 적용해, 내 삶이 풍부해지는 경험을 갖게 되는 미래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