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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Apr 23. 2019

당신을 천재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많이 연습하면 됩니다. 단, ‘제대로’.

<1만 시간의 재발견_안데르스 에릭슨, 로버트 풀>을 읽고.



공부를 잘하는 친구와 성적을 비교하며 혼을 내는 부모에게, 제일 당당하면서도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걔는 머리가 좋으니까.”

“걔는 천재니까 그렇지.”


이야기를 듣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화가 난다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먼저 앞설 것 같다. 저 이야기의 전제는 머리가 좋고 천재라는 것은 유전에 기인한 것이고, 나는 그런 유전자를 받지 못했으니 이게 모두 부모 탓이다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답답하기도 할 것 같다. 이렇게 돈을 들여 학원을 보내고 새벽까지 두 눈을 비벼가며 공부를 하는 아이인데, 왜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 들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유전자를 탓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일은 통하지 않을 듯 싶다. “나는 왜 해도 안되지?”라는 질문의 답을 지금까지, 왜, 외부적인 요인에서만 찾으려고 했을까. <1만 시간의 재발견> _안데르스 에릭슨, 로버트 풀을 읽다 보면, 부끄럽기 그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핑계만 찾고 싶어 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적나라하기 확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만 시간’은, 10여년 전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통해 노력의 정도로 이미 각인된 바 있다. 한 분야에 적어도 1만 시간은 투자해야, 그 분야에서 전문가로 최고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아웃라이어>를 통해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1만 시간'은 최고의 기준이었다. 당시에는 참 다행인 이야기일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1만 시간이라는 노력을 쏟아내지 못한 탓이니, 1만이라는 노력의 시간만 보내면 나도 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나도 한 분야의 탁월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굳건해졌다. 


그런데 좀 억울한 면 그리고 궁금한 점도 생겼다. 분명, 나보다 조금만 노력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잘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1만 시간은 훌쩍 뛰어넘는 시간을 준비했지만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말고, 잘하려고 해라”는 말이 있다. 전자의 경우는 잘하려는 것에 집중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효율적인 노력이 가능했고, 후자는 열심히만 했을 뿐 전략이 없었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은 뭔가가 부족했다. 그래서 1만 시간의 법칙이 성공하려면, 즉, 노력에게 배신당하지 않으려면 안데르스 에릭슨과 로버트 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책에서 정말 수없이 반복한다. 연습을 하되, 열심히가 아닌 다르게 연습하는 것. 곧, 자신의 ‘컴포트 존’에서 벗어난 ‘의식적인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재능과 유전에서 자꾸 핑곗거리를 찾고 있다면 다음 문단의 마지막 문장을 큰 소리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장기적으로 어떤 사람의 실력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인 차이가
정말로 존재한다 해도, 그것이 ‘음악 유전자’나 ‘체스 유전자’, ‘수학 유전자’처럼
기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그런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런 유전적 차이가 만약 존재한다면,
그것은 기술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연습과 노력을 통해서 발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생각한다. -352p


어쩌면 우리는 지난 과거의 시절, 천재가 될 기회를 놓치며 시간을 보내왔는지도 모른다. 바로 지금, 최고 혹은 전문가라는 호칭을 즐기고 있었을 시간을 과거의 무엇과 바꾸었던 것일까.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 스스로에게 함부로 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있나 (노력을 통해 재능을 발견해본 경험이 있나)

무엇을 할 때 기분이 좋고 행복한지 알고 있나 (내 노력으로 인정받는 즐거움을 겪어 보았나)

어떤 점을 보완하면 좋을지 알고 있나 (‘의식적인 연습’을 하기 위해 방법을 고민해 본 적이 있나)

내가 원하는 모습을 확실하게 그려놓고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보았나 (‘심적 표상’을 제대로 그려보았나)

누군가 “너는 000은 안돼”라며 부정적인 결론을 너무 빨리 내놓았을 때, 나를 지키고자 했는가 (‘자기 충족적 예언’의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해 보았나)


‘심적 표상’은 사물, 관념, 정보, 이외에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뇌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에 상응하는 심적 구조물. ‘자기 충족적 예언’은 음치라는 말을 들었던 아이는 결코 악기를 연주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노래도 잘하지 못하며, 수학에 재능이 없다는 말을 들었던 아이는 스스로 그렇게 믿으면서 자란다. 그래서 그런 예언이 스스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 질문들에 대해 고민을 해본 적도 없고 이런 질문들을 생각해볼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나는 할 수 없다고 여기며 나를 그렇게 대접해 온 과거에 대해 사과한다. 누군가와 비교하며 상대방을 부러워만 했던 내가 부끄럽다. 그리고 더 이상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지 않으려 한다. 


이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고 실천한다면, 당신도 나도 천재가 될 수 있다. 제대로 된 ‘의식적인 연습’으로, 내가 그리는 ‘심적 표상’을 따라 멈추지 않고 이어간다면 말이다. 나이는 상관없다. 천재라는 수식어는 젊음에만 해당하는 단어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이러한 방법을 터득하고 즐기는 삶을 살고 있다면,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아이에게도 최고의 선물을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나를 최고로 이끌어주는 도구인 ‘의식적인 연습’을 진행하고자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자신을 반복해서 다시 만들 수 있다는 확신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다. -383p





#씽큐베이션 #더불어배우다 #대교 #1만시간의재발견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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