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오 카쿠의 ‘마음의 미래’를 읽고
우리가 즐겨 보는 SF 영화나 SF 소설의 SF는 science fiction의 약자로 공상 과학을 의미한다. 공상의 뜻은 이러하다.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막연히 그리어 봄. 또는 그런 생각”. 즉, SF 영화나 SF 소설은 가상, 허구, 상상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어머나,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라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연출해낸 사람들의 상상력에 찬사를 보내고, 가끔은 스트레스를 풀고 가끔은 황홀한 경험을 가끔은 스릴을 느끼면 그만이었다. 내 현실 생활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SF 영화나 소설을 즐기지는 못할 것 같다. 상상력에 찬사를 보내기보다는, 더 이상 ‘지나친’ 상상은 자제하라고 외치고 싶다. 내 생애 경험하지는 못할 것만 같았던 일들이, 100세 시대라며 폭죽을 터뜨리는 현 상황에서는 나에게 충분히 영향을 미치고도 남을 일로 여겨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끈 이론, 평행우주론의 창시자라는 미치오 카쿠의 [마음의 미래]는 솔직히 내 지적 수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전형적인 문과 성향이며,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를 추구하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삶에 무게를 두는 편인 나에게 이 책은 너무 어려웠다. 책장을 넘겨가면 갈수록 전문 용어들을 이해해 보겠다는 욕심도 버렸다. 독서 모임의 선정 책이기에 이 두꺼운 책을 들었지만, 나는 무슨 자격으로 이 책을 읽고 있나 싶기도 했다.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책 제목이 [마음의 미래 The Future of The Mind]라고는 하지만, ‘뇌의 미래’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의 뇌에 대한 연구가 이렇게나 많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미지의 분야라고만 생각했던 뇌가 이렇게나 노출되어 있음에 놀랐다. 차라리 이 책이 SF였으면 좋겠다.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밑줄을 치고 싶은 부분들은 있었다. 그 부분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는 자신의 저서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인간 두뇌의 가장 큰 특징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물체나 사건을 상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능력 덕분에 인간은 미래를 생각하고 예측할 수 있다. 그래서 한 철학자는 인간의 두뇌를 ‘미래를 만드는 예측기계’라고 했다.” -81p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신에 관한 생각을 과거와 미래에 투영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원한다면 이것을 ‘정신적 시간여행’이라고 불러도 좋다.” 워싱턴대학교의 신경과학자 캐슬린 맥더모트의 말이다. 또한 그녀는 자기 연구가 기억의 유용성에 관한 역사 깊은 질문에 약간의 답을 제시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이 과거를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 이유는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과정이 미래의 가능한 시나리오를 유추하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환경에 적응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183p
우리가 열심히 오늘을 사는 이유는 그저 생존을 위해 버티기 위함이 아니라, 오늘보다 더 발전된 미래에 살기 위함이다. 미래를 예측하며 노력하고, 미래를 준비하며, 과거와는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졌다는 것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특권이 아닐 수 없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지금 공부할 필요도 없고 운동을 하며 건강을 챙길 필요도 없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꿈을 꾸며 연습을 하는 것 또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똑똑한 쥐들 중 일부가 보통 쥐들보다 눈에 띄게 겁 많고 소심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기억력이 좋아지면 과거의 실수나 심리적 상처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행동이 그만큼 신중해지기 때문이다. 기억력이 좋다고 해서 모든 면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189p
적당한 망각이 이래서 감사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인위적으로 사람의 기억을 지운다던가, 인위적으로 특정한 능력을 뇌에 심는 등의 실험과 시도에는 아직까지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 또는 슬프게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 때문에 괴로운 이유는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잊혀진 기억으로 즐거울 수도 있고, 잊지 못하는 기억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개인의 결심과 선택에 따라서 결정되어야지, 외부의 물리적 행동으로 인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짐작하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도 항상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읽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바로 펜실베니아대학교의 데이비드 프리맥 박사가 처음 제안했던 ‘마음이론’이다. 복잡한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의 의도와 감정, 계획 등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생존확률이 훨씬 높다. 마음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동맹을 맺고, 적을 고립시키고, 친분을 돈독히 하려고 늘 노력한다. 그래야 자신의 영향력과 생존확률이 높아지고 좋은 짝을 찾을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중에는 “마음이론에 통달하려는 욕구가 두뇌의 진화를 촉진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93p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짐작해서 잘 행동하는 사람을 센스 있는 사람이라며 칭찬하지 않는가. 센스 있는 사람의 생활력이나 성공률이 높다는 것은 어제오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마음이론을 통해 미래의 두뇌는 얼마나 더 진화해 있을까.
뇌와 관련하여 어디까지 연구가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이와 관련된 장단점을 훑어보며 책을 덮었지만 (읽었다고 자신 있게 말은 못 하겠다. 훑어봤다고 해야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아직도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 책을 대하는 내 마음이 미래에도 쭉 놀란 상태로만 머무를 수는 없는 법이다.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미래도 언젠가는 오게 마련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있어야 한다. 변화를 아예 모르고 생활하면 바보가 되지만, 변화를 예의 주시하며 준비하면 적어도 뒤처지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마음의 미래]를 보며 혼잡스러워진 내 마음을 이렇게 다잡아 본다. 내 마음의 미래도 [마음의 미래]에 맞춰 대비해 나가면 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