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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Jun 05. 2019

독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이 놈의 영어’

외국어 공부도 결국 독서였다

영어와 관련된 내 감정을 짧게 정리하자면 ‘이 놈의 영어’다. 


어린 시절, 지금처럼 영어 교육의 광풍이 불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배우지 않았음에도 미리 집에서 영어를 배우는 친구들은 꽤 있었다. 하지만, 중학교 진학을 몇 개월 앞둔 시점에서 처음 영어 책을 접했던 나는, 이런 모음과 저런 자음이 합쳐져서 어떻게 발음을 하는지를 배우는 과정이 마치 수학 공부를 하듯 어렵고, 괴롭고, 반갑지 않은 공부로 느껴졌다.


대학에서는 실용 외국어를 4학기나 이수해야 했지만, 영어에 대한 적대감은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선택하게 했다. 그나마 전 국민의 시험인 토익 준비를 통해 영어 공부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영어로 적당히 자료는 만들 수 있었고, 아주 적당히 메일을 보낼 수 있었고, 아주 적당히 채팅을 할 수는 있었지만, 직접 말을 하는 순간이 오지 않기를 고대하며 지냈다. 


내 아이에게는 이런 시련을 넘겨줄 수 없다는 다짐으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TESOL을 이수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캠퍼스를 거닐며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은 좋았지만, 모두 외국인인 교수님들에게 과제를 전달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은 도전이었다. 특히, 실제 모의 강의를 해보기 위한 계획서는 작성할 때마다 1대 1로 지도를 해주셨는데 (그때는 정말 부담스럽기만 하고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 귀찮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열정적이신 교수님이셨다),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이 말은 문법상으로는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실제로 이런 말은 잘 쓰지 않는다.” 혹은 “좀 더 세련된 표현법이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이런 말을 덧붙이셨다. “그래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셰익스피어를 많이 읽으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정말 난감하지 않은가. 문법상으로는 맞지만, 쓰지 않는 말이라니. 

이제껏 책상에 앉아 문법을 달달 외우며 영어 공부를 했는데, 게다가 영어 공부는 주요 과목이므로 학창 시절의 많은 시간을 그렇게 보내왔는데, 문법 외에는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문법상으로는 맞지만 쓰지 않는 말이라니. 게다가 셰익스피어라니. 한글로도 쉽게 들기 어려운 셰익스피어의 책을 영어로 언제, 어떻게 읽으라는 것인지. 셰익스피어는 아이에게 미루기로 하면서도, 내 청춘의 스트레스 덩어리였던 영어에 투자했던 시간은 계속 찜찜하게 남아있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까지는 아니어도, 원서 책을 읽기는 해야 할 것 같다. 크라센의 ‘읽기 혁명’에서는, 성공적인 독서 교육의 증거들이 ‘너무나도 많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국어를 아무리 열심히 공부했다 하더라도 그 방법이 소위 이 책에서 표현하는 ‘직접 교수’ 방법이라면, 흥미를 유지하기도, 어휘력을 향상하기도, 언어의 규칙을 익히기도 어렵다. 


간혹 문맥에서 단어의 의미를 파악해내지 못하거나 잘못 이해하기도 하지만 결국 독자들은 문맥을 통해서 모르는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된다. 책을 읽고도 알지 못하고 넘어가거나 사전을 찾아봐야 하거나, 완전히 잘못 이해한 단어는 얼마 되지 않는다. 반면 문맥에서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 단어의 양은 엄청나다. 34p


단어를 외우겠다고 단어장을 들고 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사실,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기초가 있어야 짧은 문장이라도 읽어가지 않겠는가. 그런데 버스 안에서 단어의 뜻’만’ 외우는 것은, 머릿속에 그 단어를 계속 붙잡아두기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예시를 통해 익힌 단어는 이야기 속에 담긴 단어이기에 외워야 하기보다는 이해가 된다. 게다가 어떻게 쓰이는 것인지도 익힐 수 있으니, 언어를 공부함에 있어서 독서를 멀리할 이유가 없다. 이는, 외국어뿐만 아니라 모국어도 마찬가지다.


모로우와 뉴먼의 연구에서 부모가 여가시간에 책을 더 많이 읽으면 자녀가 독서를 더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부모가 독서에 별 관심이 없으면 자녀들의 독서량도 많지 않았다. 읽기에 별 관심이 없는 부모들도 자녀의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서 여러 노력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녀의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서는 모델의 존재가 중요하다. 99p


아이에게 책 읽는 모습을 직접 보이는 것은 아직까지는 거의 불가능하다. 엄마가 무슨 책을 읽는지 호기심이 든 아이는 표지를 계속 쳐다보며 이것저것 말을 걸기도 하고, 그림이라도 있으면 뒷 페이지로 넘기지 못하게 하며, 심지어 엄마를 위해(?) 예쁘게 그림도 그려준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아이의 숙면이 필수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책을 읽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독서모임 덕분에 일주일에 한 권씩 구매한 책이 택배로 오고, 식탁 한쪽에 눕혀져 있는 책은 자주 교체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독서 습관을 잡아주기 위한 엄마의 노력 중 하나이지만, 책에서는 독서의 ‘보상’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독서를 위한 보상에는 외적인 보상과 내적인 보상이 있는데, 외적인 보상은 부모나 선생님이 선택하기 쉬운 방법이지만 (선물을 준다거나 포인트를 추가한다거나 등), 아이를 독서의 세계로 이끌기에는 아주 어려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외적인 보상을 받는 아이들은 목표로 제시된 페이지 이상은 읽지 않았으나, 내적인 동기로 책을 읽는 아이들은 목표로 제시된 페이지와는 상관없이 훨씬 많이 책을 읽었으니 말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무엇이 훌륭한 문체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문체는 의식적으로 학습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읽기를 통해 흡수되거나 무의식적으로 습득되는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151p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쓸 때 모호하고 추상적이던 것이 명백하고 정교해진다. 자신의 생각을 종이에 쓸 때 여러 생각 사이의 관계를 볼 수 있고 좀 더 나은 생각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쓰기는 사람을 좀 더 현명하게 만들어준다. 155p


게다가 독서는, 언어 공부의 가장 마지막 단계라는 ‘쓰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글쓰기의 효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기 쓰기는 어른들에게도 권장되지 않는가. 


결국, 독서는 언어 공부의 처음이자 완성이었다.


사실, 모국어조차 제대로 읽고 이해하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독서를 해야 한다. 모국어도 독서가 필요한데,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것 역시 독서가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책장에서 잠자고 있던 원서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책 사는 것은 좋아하면서도 끝까지 읽는 것은 힘들었던 지난 시절, 사들인 원서들이 꽤 된다. 무려 2010년 10월에 샀던 책을 식탁 위에 꺼내 놓는다. 흥미 위주이며 깊이는 없는 책이지만, 원서 읽기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라면 나이와 걸맞지 않은 책이라 할지라도 시작해보려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Confessions of a Shopaholic” 읽기와 함께 다시 시작하는 ‘이 놈의 영어’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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