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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Jun 26. 2019

아침이면, 산책을 할 겁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읽고

원래는,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바로 산책을 시작하려고 했었다. 아직 어린아이를 두고, 새벽 운동이니 아침 산책이니 하는 것은 절대 불가다. 일단, 아이를 어딘가에 맡겨 놓아야 그때부터 나의 새벽이 나의 아침이 시작되니 말이다.


그런데 계획이 어긋났다. 오늘 아침까지 넘겨야 하는 작업을, 어제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탓이다. 그냥 이대로 전달할 수도 있지만, 찜찜한 기분이 든다면 다시 검토해야 마땅했다. 그래서 아이를 유치원 셔틀에 태워 보내고는, 집으로 돌아와 바로 노트북을 켰다. 


11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비로소 일은 끝났다. 산책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 1초 정도 고민했다. 평소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산책을 안 갔을 것이다. 9시에 하는 산책은 정말 아침의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이제부터 나갈 준비를 하면 거의 점심시간이나 다름없다. 내가 계획했던 상쾌한 산책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늦어졌지만, 운동화를 신고 산책을 나갔다.


산책길은 다름 아닌, 아파트 단지 안이다. 단지가 넓은 편이라 사실 끝까지 가본 적이 없었고, 가볼 이유도 없었다. 본래 내 동네를 내가 모르는 법이다. 그런데 얼마 전 우체국을 찾느라 단지의 ‘거의’ 끝까지 가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오래된 아파트라 나무는 울창했고, 높이 올라간 나뭇잎의 초록색과 하늘의 파란색이 한눈에 들어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제는 잠들면서, 그 장면을 꼭 오전에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터였다. 요 며칠 제대로 운동도 하지 못했는데, 건강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산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살짝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좋았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계획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흔들리지 않고 산책을 했던 이유는 ‘지금, 오늘, 내가 원하는 것을 양보하지 않고, 충실히, 제대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아주 크게 들었기 때문이다. 계획했던 시간이 아니라며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면, 난 집에서 뭘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잠들기 전, 하고 싶었던 산책을 하지 못하고 밤이 되었음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샐리 티스테딜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읽었다. ‘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실질적 조언’이라는 작은 제목이 붙은 이 책은 죽음이라는 진지한 주제를 논하면서도 잔잔하게 흘러가는 에세이 형식이라,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초반에는 죽음에 대한 새삼스런 (평소에는 생각할 일 조차 없었으니까) 고찰에, 밑줄까지 쳐 가며 심각하게 읽었다.


“위태로운 아름다움. 우리의 고충이 여기에 있다.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영원할 수 없어 고귀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늘 잊고 산다.” – 14p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할 때는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음이 왔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50p


“사람들은 죽어가면서 품위(dignity)를 잃을까 봐 몹시 두려워한다.” -78p



생각하고 있지 않던 주제를 갑자기 생각하게 되니, 처음에는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오히려 ‘삶’에 대한 생각을 하고 싶어 졌다. 


어떠한 모습으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접하게 될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다. 꿈에 그리는 임종 순간이란 없음을, 이 책의 많은 이야기를 통해서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아직 언제 올지 모를 그 순간을 위해 벌써 뭔가를 준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머리로는 알겠지만, 아직 마음으로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보다는 인생의 매 순간을 ‘더’ 생각하고 싶어 졌다. 내 삶이 더 소중해졌다.


후회 없이 살고 싶어 졌다. 침대에 누워, 오늘의 아쉬웠던 점을 생각하며 속상해하는 마음으로 잠들지 않는다면 그게 후회 없이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산책을 하고 싶었다면,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전날부터 내가 원해서 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시간이 어찌 되었든 해야 했다. 밤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충실한 하루를 보냈다고 자부하며 잠드는 것만큼, 만족스러운 시간이 있을까.


더 잘 살고 싶어 졌다. 최선을 다해서.






#씽큐베이션 #더불어배우다 #대교 #인생의마지막순간에서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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