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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Aug 14. 2019

‘세계 최고가 아닌 최고의 당신’이 되고자 한다면

고르지 말고 선택하라

무더위가 한창인 7월의 마지막 주, 아이를 문화센터 수업에 데려다주고는 잠시 땀을 식히고자 교실 앞 의자에 앉았다. 


아무리 실내라고는 해도 좀처럼 머리의 땀이 마르지 않는, 더워도 너무 더운 무더위가 한창이었다. 아직 여름휴가도 시작되기 전이었다. 몸과 마음 모두 더위로 지쳐 있었다. 그런데 금세 내 눈은 당황스러워졌다. 9월부터 시작되는 가을학기 접수를 위해 집어 든 책자는 온통 갈색이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긴 옷차림이었다. 지금 내가 있는 상황과는 동떨어진 사진들을 보며 실소가 터져 나왔다. 세상에는 언제나 나보다 앞선 시간을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여름에 가을을 구상하느라 참 고생이 많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 아이의 가을을 책임져줄 프로그램들을 찾아보았다.


이렇게 다양한 수업 중 내 아이에게 필요할 만한 수업들을 몇 가지 ‘선택’ 한 후, 이내 뿌듯함을 느꼈다. 최고의 '선택'이었다. 역시 나는 아이를 잘 아는 엄마다. 그런데, 이후에 만나게 된 다음의 문구는 나를 좀 혼란스럽게 했다. 


선택은 적극적 행위다. 선택의 자유가 있으면 자신의 기회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아무도 주목하지 못할 만한 기회들까지도 가능해진다. 고르기는 수동적 행위다. 제공된 선택지에서 고를 때는 다른 누군가는 이미 선택다운 선택을 했는데 당신은 그저 제공받은 초콜릿 상자에서 초코 캔디 하나를 고르고 있는 셈이다.

– ‘다크호스’ 125 p


나는 선택을 했던 것일까 제시된 몇 가지 예시 중 골랐던 것일까?


선택과 고르기를 운운하며 문화센터 수업을 결정하는 행동에 문제점을 제기할 생각은 없다. 아이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문화센터만큼 가성비가 높은 것도 없으니 말이다. 가성비 높은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서 나는 필요한 것을 골랐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만족했었다. 이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믿었다. 문화센터뿐만이 아니다. 


매사 그랬다. 




평균보다는 개개인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평균의 종말’의 저자 토드 로즈가, 이번에는 성공의 표준 공식을 깨고자 ‘다크호스’로 돌아왔다. 다크호스란, 표준적 개념에 따른 승자와는 거리가 있다. 주목을 받지 못했던 뜻밖의 승자를 뜻한다. 다크호스에 ‘뜻밖’이라는 표현이 붙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은 평균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책 ‘다크호스’에서는 기존의 표준, 평균,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유별난 과거를 갖고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말로만 다크호스가 되라고 주장했다면 허황된 구호에 불과했을 텐데, 실제로 존재하는 많은 다크호스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한 편으로는 큰 위안을 얻었다.



커피숍에서 혼자 미소를 남발하며 읽게 만들었던 성공 스토리는, 단연 수전 로저스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14살에 암으로 어머니를 잃고, 동생들을 돌보며 살림을 도맡아 하다 고등학교 중퇴 후 결혼을 한다. 지속되는 폭력에 지친 그녀는 결국 이혼을 결심한다. 어린 나이부터 음악을 시작하는 보통의 뮤지션들과 다르게, 그녀는 뒤늦게 음악에 대한 열정을 느낀다. 전문 음향기사가 되고 싶었으나, 고등학교 중퇴 학력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한 음악 학교의 접수 계원으로 취직을 하며 기회를 엿보던 그녀는, 음향 정비기사 공부를 혼자 한다. 몇 개월 후, 한 업체에서 음향기술 견습생을 구한다는 구인 광고를 보고 지원하여 합격한다. 얼마 되지 않아, 그 회사의 총 4명뿐인 정비기사에 들게 된다. 수리 방문 서비스로 자주 드나들었던 스튜디오에서 일을 권유받아 레코드 사의 정규직 정비 기사가 된다. 라이브 공연에서 녹음 기사로도 일하게 된 그녀의 나이는 24살이었다. 이후, 프린스의 음향 정비 기사가 되어 투어 팀에도 합류하게 된다. 영향력 있는 프로듀서로 역할이 격상되는 위치에 오른 그녀는, 인간의 뇌에 흥미가 생겨 인지과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41살에 뇌 과학 공부를 위해 대학에 진학한다. 음악인지 박사 취득 직후 보스턴 버클리 음대에서 교수직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재직 중이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과거사는,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다이내믹할 수가 없다. 그녀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던 이유는, 다음을 예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뮤지션을 꿈꾸며 음대 교수를 희망한다면, 예상 가능한 길이 있다. 그런데 예측이 가능하면 재미가 없다. 스토리가 되지도 않는다. 수전은 자신의 길을 새롭게 선택해 나갔기 때문에, 행동 하나하나에 예측이 불가능했다. 음향기사가 되고 싶다면서, 음악 학교의 접수 계원으로 취업하는 ‘선택’을 또 누가 할 수 있을까. 


열정 좇기에는 별 노력이 들지 않는다. 반면에 열정 설계에는 더 많은 생각과 관심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열정 설계는 힘든 일이지만 그 이점은 막대하다.

-112p


선택은 어렵다. 고르는 것은 기존의 틀 안에서 정하는 것이지만, 선택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선택을 통해 성공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누구나 가능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상황이나 사람을 불평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가끔씩 이렇게 말해요. 음악계에서 성공하는 일은 고속도로 갓길에서 엄지손가락을 내밀고 서서 누군가 차를 태워주길 마냥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요. 제가 직접 접해본 음악계는 그렇지 않았어요. 저는 엄지손가락만 내밀고 가만히 서 있었던 적이 없어요. 걸어갔어요. 

우리 업계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다들 얼마간은 걸었어요. 그러다 마침내 차를 얻어 탔지만 그런 도움을 받은 이유는 누군가 걷고 있는 우리를 보았고, 사람은 누구나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를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엄지손가락만 내밀고 우두커니 서서 태워주길 기다리는 자세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아요.”

-135p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존재 조차 몰랐던 수전 로저스는 이제 나의 롤모델이다. 41살에 대학의 문턱에 들어서 교수의 자리까지 오른 그녀를 보면, 지금 내 나이에 성장을 멈춘다는 것이 얼마나 크나큰 죄악인가 싶기도 하다.


한편으로, 우리는 선택을 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기존의 틀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골라야 하는 테두리 밖에는 무엇이 있는지 고개를 조금이라도 돌려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테두리가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그러기도 할 테다.


선택할 수 있는 상황 그리고 선택해도 괜찮다는 안정감이 필요할 것 같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선뜻 실행에 옮기기에는 주저하게 되는 기성세대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다음 세대들은 마음껏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의무감도 느낀다. 


그래서 ‘세계 최고가 아닌 최고의 당신’이 되고자 한다면, 고르지 말고 선택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구불구불한 길이 될 수 있지만, 그 또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과정이 될 테니 말이다. 


#다크호스 #토드로즈



Photo by Alejandro Alvar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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