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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Sep 09. 2019

“땅바닥에 하늘이 있네?”

하늘은 어디에든 있다

힘들 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은 끝이 없다. 옆으로도 높이로도 그 크기를 감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중, 하늘보다 넓은 것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 아무리 크다 한 들, 구깃구깃 접어서 저 높은 곳으로 던져 버리면 저 넓은 하늘에 폭 빠져 보이지도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내가 힘든 것도 결국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느끼게 되기도 할 테다.


사실, 고민은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그 시절에 그런 고민을 했었나 싶을 정도로 잊혀지게 마련이다. 가끔 예전의 일기장을 들춰보면 예상치 못한 과거를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개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나 싶을 때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보통 지금의 입장에서 본다면 별로 큰 의미가 있지도 않다. 과거의 내가 낯설어 지기도 한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보아도 고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는데, 젊은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안타까움은 오죽했을까. 고민도 시간과 함께 흘러갈 것을 미련스럽게 붙잡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안쓰러웠을까. 그래서 우리네 어른들은,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힘이 들 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고 했는가 보다.


하늘은 그래서 특별하다. 하늘색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특별한 색이기도 하다. 저 위에 있기에 감히 손을 뻗을 수도 없지만, 그러기에 더 신비롭다. 우리가 그리워하지만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은 모두 저 하늘 위에 있다. 선망의 대상이다.


비가 쏟아져 내리던 밤을 뒤로하고, 우산을 쓸까 말까 망설여야 하는 아침이었다.


유치원을 가기 위해 밖을 나선 너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바닥을 보았다.


“땅바닥에 하늘이 있네?”



바닥에 고여 있던 빗물은 스스로를 거울로 만들었고, 거울 속에는 고개를 올려야만 볼 수 있던 하늘이 담겨 있었다. 잠깐잠깐 부는 바람에 그리고 네가 휘젓는 발길에 하늘은 잠시 찌그러지기도 하고 바다인 것 마냥 파도를 품기도 했다. 우러러봐야만 했던 하늘은 너의 발길질도 받아줄 만큼 마음이 넓었다.


너는 하늘은 하늘색인데 땅바닥의 하늘은 살짝 짙어 보여서 예쁘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미련 없이 다시 가던 길을 이어 갔다.


그런데 엄마는 “땅바닥에 하늘이 있다”는 너의 표현이 무척 좋았다. 하늘은 꼭 하늘에 있지 않다고 네가 알려주었으니 말이다.


그러게. 하늘은 땅바닥에도 있네. 하늘이 저 위 말고 땅바닥에만 있을까. 네가 거울을 비추면 거울이 있는 그 어느 곳에도 하늘이 있겠지. 창문에도 하늘이 있고, 가끔은 네 눈에도 하늘이 있다.


하늘을 보고 싶은데 만약 고개를 들 수 없다면, 그때는 그저 계속 하늘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럼 하늘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것 같거든. 네가 땅바닥에서 하늘을 발견했듯이 말이다. 비록 네가 땅바닥에서 발견한 하늘은, 너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색깔의 하늘이었지만.


조금 더 이야기를 확대해 보자면, 힘든 네가 위로받을 곳이 많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하늘은 의외로 많은 곳에서 발견되니 말이다.


하늘은 어디에든 있다.








Photo by Agustinus Nathanie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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