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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Dec 11. 2019

충고를 전달하는 방법

너에게 정말 도움이 되고 싶은데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는 영어 회화 교실에는, 오늘 하루 엄마에게 하나라도 더 이야기 해주고 싶은 어르신들이 가득하다. 그 날의 토론 주제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매번 다른 주제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어르신들과 대치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물론, 큰 소리로 싸우는 상황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진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대치 상황이 이어지지도 않을 테다. 부모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하면, 자식의 입장에서는 몇 초라도 귀를 귀울이는 시도 조차 하고 싶지 않을 테니 말이다.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슬프게도 대개 부모 자식 간의 대화는 그렇게 흘러가기 마련인 것 같다. 그런데 학원에서 만난 어르신들과의 관계는 부모 자식 간의 사이도 아니고, 무엇을 배우려고 만난 사이다. 그러기에 서로 한 발자국씩 물러난 상태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얼굴을 붉힐 만큼 대단한 상황으로 진행되는 경우는 없다. 어쩌면, 영어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다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배움의 습관에 익숙하신 분들이라, 막무가내로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날은 유독 엄마가 타깃이 되었다. 그 날의 주제가 무의미할 정도로 여러 대화가 오가다가 ‘교육비는 낭비’라는 언급으로 이어졌다. 손자 손녀들이 있거나 이제 막 결혼 적령기의 자녀들을 둔 어르신들은 현 세대의 과도한 교육열이 심각하다고 걱정을 하셨다. 맞다. 많은 아이들이 공부로 고통 받고 있다. 그런데 분명 그 분들이 오해하고 있는 상황도 있다. 나름대로 지금 부모 세대들의 입장을 이야기해 보고자 하는 중이었는데, 한 분께서 목소리가 높아지셨다.


“젊은 사람들은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이지?”


20대의 젊은 외국인 강사는 사람에 따라 다를 뿐이라며 해명에 나섰다. 젊은 사람 취급받아서 살짝 좋아진 기분을 뒤로하고, 엄마도 그 분의 기분을 달래 드리기 위해 머리가 바빠졌다. 사실 지난 9월 이 수업을 수강하기 위해 교실에 들어섰을 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분들로만 이루어진 이 공간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수강을 취소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영어 공부 외에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어떤 경험이 지금 저 분의 모습을 만들었을까 궁금해졌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때문에 수업 시간에 진행되는 그 분들의 대화에도 집중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만두지 않고 학원에 참석하고 있다. 이 이야기와 함께 I’m still here.로 웃으며 마무리 짓고 다른 주제로 넘어갔지만, 엄마는 다른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었다.


“충고를 전달하는 방법이 달라지면 젊은 사람들이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와 “저도 저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충고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가 바로 그것이었다. 


실제로 수업 시간 혹은 쉬는 시간에 어르신들이 엄마에게 ‘무엇 무엇을 하면 좋더라’라고 하시는 이야기는 별로 와 닿지 않는다. 아무 때나 훅 들어오는 충고는, 쉽게 들어온 만큼 쉽게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대신, 그 분들이 평상시에 하는 말에서 필요한 교훈을 얻곤 한다. 그 분들은 아무런 의도가 없었지만, 충고가 필요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절실한 만큼 원하는 조언을 찾게 된다. 


그래서 충고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충고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충고를 해주고 싶은 상대방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속상해하기보다는, 내가 충고를 받고 싶은 사람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목소리를 높이신 그 분이 충고를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엄마도 그 분에게 배우고 싶은 점이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가장 만만한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히나 자식들은 부모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분이 화가 나신 것은 아마 이런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네가 좀 더 크고 나면, 너 역시 엄마의 말이 다 듣기 싫어질 수도 있을 테다. 지금은 엄마 때랑 다르다며 알지도 못하면서 잔소리를 한다고 문을 쾅 닫아버릴 수도 있겠지.


그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는 것조차 너무 큰 스트레스라, 엄마는 ‘충고’라는 형식의 대화는 너에게 아예 하지 않으려 지금부터 마음을 잡는다. 대신, 너에게 보여주고 싶다. 엄마의 삶을 바라보면서 네가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엄마의 목표가 되었다. 엄마의 선택이 틀릴 수도 있다. 틀린 행동을 통해서도 ‘저렇게 하면 안 되겠다’를 배울 수 있겠지. 


너에게 보여주는 엄마의 행동이 너에게 주는 교훈 내지 충고가 되기 위해서는, 엄마를 바라보는 너의 ‘평가’가 먼저일 듯싶다. 가장 가까이서 엄마를 지켜보는 너에게 평가를 받는다니 그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지만, 그만큼 엄마가 더 긴장하고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니 나쁘지만은 않다.


여하튼, 엄마는 너에게 충고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선택했다. 이 방법이 통했으면 좋겠다. 너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엄마가 되고 싶거든. 






Photo by Etienne Boulang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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