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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Dec 18. 2019

"혹시, 아빠가 저주에 걸린 건 아닐까?”

서로에게 기대하고 있는 모습들

연말이다. 


어른들은 연말이면 모임이 많아진단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념으로, 평소 자주 만나지 못하던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어야 하거든. 항상 마음을 나누고 싶은 친한 친구들은 오히려 만남의 횟수가 줄어드는, 그런 이상한 인간관계가 어른이 되면 펼쳐진다. 다급한 사람이 중요한 사람으로 포장되고, 중요한 것 ‘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느라 진짜 중요한 사람은 순위가 뒤로 밀려나는 상황이 벌어지니 말이다. 그래서 연말에는, 특히나 12월에는 꼭 만나고 싶어지는 ‘내 사람들’이다. 


그 날은, 아빠가 퇴근 후 친구들과 늦게까지 송년 모임을 가진 다음 날이었다.


주말이면 으레 아빠가 놀아주기를 바라는 너는, 아빠가 무척이나 이상하게 여겨졌던 모양이다. 아침에도 매우 늦게 일어났고, 너에게 같이 만화를 보자고 하고선 옆에서 잠이 들었다. 하루 종일 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아빠를 반나절이나 지켜보고 있던 너였다. 같이 블록 놀이를 하는 줄만 알았던 아빠를 쳐다보니, 아빠는 너의 등 뒤에 바짝 기대어 또 잠을 자고 있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아빠의 모습에 너는 무척이나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다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아빠가 저주에 걸린 것은 아닐까?”


엄마는 폭소가 터져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툭하면 저주에 걸려 오랜 시간 잠만 자는 동화 속 이상한 공주들이 아빠와 비슷하게 여겨졌나 보다. 아빠가 저주에 걸렸다는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아빠에게는 미안하지만, 하는 수 없이 아빠를 거칠게 깨울 수밖에 없었다. 


너를 위해 하는 수 없이 눈을 뜨고 다시 너와 놀이주기를 시작하는 아빠를 보며,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A라는 사람을 알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너는 A가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상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기에 앞으로도 자상한 모습을 기대한다. 누군가는 A를 말 수도 별로 없고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하여 특별히 기대하는 바도 없고, 간혹 A가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려 하면 갑자기 유난을 떤다고 여기거나 무시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A가 모임에 참석하면 본인이 얻을 것만 챙겨 간다고 여겨,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아마도 A는 외향적이기보다는 조용한 성격에 상대방의 기분을 세심하게 챙기는 스타일의 사람일 수 있다. 그러한 하나의 성격이, A를 바라보는 상대방에 따라 오해를 받아가며 이렇게나 다양하게 비춰지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A는 다른 사람보다도 자신을 긍정적으로 여겨주는 너와 더욱 돈독한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해나가고자 할 것이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는가. 자신의 장점을 귀하게 여겨주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네 아빠는 무척이나 피곤한 하루였을 테지만 네가 알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기에, 감기는 눈을 억지로 떠 가며 기꺼이 그 모습을 다시 보여주고자 애를 썼다. 엄마는 아빠의 그런 마음을 알기에 조금은 짠하기도 했단다.


상대방이 나에게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을 때, 기꺼이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바로 사랑인 것 같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기대는 무엇인가를 이뤄낸 결과를 바라지 않는다. 모습이다. 네가 아빠에게 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놀아주는 모습을 기대한 것은 사랑하기에 가능한 것이고, 아빠가 언제나 활기차게 웃는 너의 모습을 기대한 것 또한 사랑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 그것보다 아름다운 관계가 또 있을까 싶다. 


엄마가 너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다면, 역시 아빠와 같다. 언제나 활기차게 웃는 모습.


사랑한다. 




Photo by Tyler Nix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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