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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Apr 18. 2020

이야기가 쌓여가는 세상

너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붙잡고 있을게

처음으로 너의 이빨 하나가 빠졌다.


웃을 때마다 구멍이 숭숭 나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늘어날 때마다, 내 이빨은 언제 빠지나 손꼽아 기다리던 너였다. 한 달 즈음 전부터 흔들거리는 이빨이 하나 있어, 매일매일이 설렌다는 너였다. 


막대 아이스크림을 먹는 도중, 갑자기 아이스크림에서 피 맛이 난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입술 밖으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너는 오물오물 하더니만 아이스크림이 아닌 다른 것을 뱉었다. 그 조그마한 이빨을 보며 얼마나 신나 하던지, 너는 연신 ‘축제를 열자’며 춤을 추었고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야!”


사실, 이빨 하나가 빠진 것이 어떻게 인생 최고의 날이 될 수 있을까. 새 이빨이 나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이빨이 빠지는 현상이 무서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빨이 계속 흔들리고 있다면 아플까 두려울 수도 있겠고 말이다. 그런데 네가 그렇게 이빨 빠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이 세상에 흘러 다니는 이야기들 덕분이었다. 


너는 이빨을 지붕에 던지면 까치가 주워가서 튼튼한 새 이빨을 준다는 이야기도 알고 있었고, tooth fairy 이야기도 알고 있었다. Tooth fairy가 이빨을 잘 가져갈 수 있도록, 미리 이빨 보관 상자까지 마련해 둔 너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 전해오면서 빠져나갈 틈을 보완해 온 이야기들은 너의 두려움을 기대감으로 바꿔 놓은 후였다.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이야기는 대개 비유적이다. 그러기에 이야기를 ‘잘’ 이해하려면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야기 자체만 읽는다면 재밌네 정도로 그치고 말겠지만, 이야기에는 늘 숨겨진 또 다른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행간을 잘 읽을 줄 아는 능력은, 장난처럼 보이는 가벼운 이야기에도 필요하다. 네가 읽은 동화책들에도 교훈이라는 것이 있다. 이야기에는 재미 외에도 배울 것이 있다는 뜻이다.


엄마가 BGM처럼 하루 종일 틀어놓는 노래와 이야기를 듣던 중, 한창 네가 그리스 로마 이야기에 빠져있을 때였다. 한 번은 엄마에게 와서 너는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엄마, 모든 괴물들에는 다 이유가 있어.” 네가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었다. 그저 무서운 괴물들이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너에게 용기를 주고 배움을 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여러 세대에 걸쳐 정교하게 다듬어진 이야기만은 아니다. 


너의 이야기도 너에게 용기를 주고 배움을 줄 수 있다. 너의 이야기도 만들어져 간다. 네 과거의 이야기가 미래의 너에게 또 다른 감흥과 영감을 줄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영웅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다양한 이야기가 중복되는 교훈을 담고 있듯, 네가 고민하고 겪고 있는 상황들도 과거의 교훈을 똑같이 필요로 할 때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엄마는 너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다. 너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가능한 오래 기억하고 있고자 한다. 너를 많이 지켜보고, 네가 이겨내는 모습을 보고, 네 인생에서 과거의 네가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그런 이야기들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다. 너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잘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고, 없다면 너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엄마가 만들어보고 싶다. 너를 위해 멋진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


이야기가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야기가 쌓여가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다.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너의 이야기 역시 너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큰 힘이 될 수 있도록, 너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붙잡고 있을게.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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