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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Nov 03. 2019

나눌 만한 가치가 있는 과거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일까

영화 ‘여배우들의 티타임 (Nothing Like a Dame)’

다른 글에서도 언급을 했었지만, 요새 평일 오전 시간이면 ‘어르신들’과 함께한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못 배울 것 같다’며 수영장에서 열의를 보이시는 분들 그리고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공부해야 한다’며 영어 학원에서 수준급 실력을 선보이는 분들 모두 60대 이상, 심지어 70대도 포함된 어르신들이다.


처음에는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내 신세를 살짝 한탄하기도 했었고, 내 또래를 찾기가 힘든 나머지 내가 있으면 안 되는 시간과 장소에 있나 의문을 갖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초반에만 잠깐 뿐이었다. 그리고 이 분들과 두 달이 넘는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은 샘이 나기도 했고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다. 샘이 나는 이유는 나도 저런 어르신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고, 미안한 이유는 염치없게도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만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꼰대가 되기는 싫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다. 하지만, 앞서간 사람들 모두가 꼰대는 아니다. 어른이 된 입장에서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을 만났다면, 어떠한 과거가 지금의 그들을 만들어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은 당연할 것이다. 물론, 이야기를 들은 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개인의 몫이다. 우리 모두 자기만의 고유한 자서전을 만들어가는 입장이기에, 누구에게나 딱 맞게 적용되는 삶의 정석은 찾기 힘들 테니 말이다. 그리고 무조건 따라 하려고만 해서도 안 된다. 나 역시 나만의 자서전을 만들어 가야 하니 말이다. 


궁금하기는 ‘여배우’라는 존재 역시 마찬가지다. 좀처럼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흘리지 않고, 새초롬하며, 늘 베일에 싸여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어르신이 된 여배우는 특별하다. 알려지지 않은 어떤 과거를 갖고 있기에 지금까지 이렇게 우아한 모습으로 당당한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배우들의 티타임 (Nothing Like a Dame)'


영화의 제목이 원제목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바뀌어 실소를 자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Nothing Like a Dame’이라는 제목보다 ‘여배우들의 티타임’이 훨씬 좋았다. Dame은 영국에서 훈장을 받은 여성에게 붙이는 직함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주디 덴치, 매기 스미스, 에일린 앗킨스, 조안 플로라이트 모두 시기는 다르지만 데임 (Dame)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이 이유 때문에 ‘Nothing Like a Dame’라는 제목이 붙은 듯 하지만, 티타임만큼이나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기 좋은 자리가 또 있을까.


내가 현실에서 만나는 어르신들도, 영화 속에서 바라보는 여배우들도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60대인지 70대인지 아니면 80대인지 분별할 수 있는 눈썰미도 없고, 어쩌면 그들의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소설을 읽듯 그들의 이야기는 자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조안 플로라이트 (Joan Plowright)


“요가와 정신수양을 시작하라고 말해줄래. 뇌에 대해 공부하고 그게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내가 나중에서야 관심 갖게 된 것들을 더 일찍 시작하라고 말해주고 싶어.” 


조안 플로라이트는 현재 시력이 많이 나빠졌기에, 더 이러한 충고를 해주고 싶었던 듯했다.


매기 스미스 (Maggie Smith)


“아마 충고 따윈 안 들을 테니까. 그래도 굳이 찾자면 의심을 거두라고 말해주고 싶네.”


주디 덴치 (Judi Dench)


“사랑에 쉽게 빠지지 말라고 말해줄 거야.”



주디 덴치는, 몸이 좋지 않아 급하게 만났던 젊은 구급대원 이야기를 했다. 자신에게 이름을 물어본 후, 보호자가 있느냐고 물어봤다는 것에 굉장히 불쾌해했다. 아직도 연기자라는 본업에 충실할 수 있는 체력이 있는 만큼, 보호자가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되기는 싫었던 것이다. 그녀의 이런 자신감과 자존심도 대단하게 여겨졌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 모두 기회가 된다면 계속 연기를 하고 싶어 했다. 


내가 보기에 젊은 시절의 그녀들은 모두 미녀들이었음에도, 클레오파트라를 절세 미녀였다는 이유로 연기하기 두려워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리뷰는 모르는 것이 낫다며 평론가에 의해 상처 받았던 이야기도 덤덤하게 털어놓는 모습에서 그들 역시 평범한 인간임을 실감케 하기도 했다. 그들이 겪었던 차별과 시련도, 지금의 그녀들을 만들어 준 단단한 훈련의 시간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들 또한 벗어날 수 없었고, 그리고 이겨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나눌 만한 가치가 있는 과거는 겪었던 시련이나 목표를 이겨내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과거에 당당하기에 저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리라. 그것도 자랑스러운 흥분 상태가 아닌, 덤덤하게. 


내가 어떤 ‘어르신’의 모습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오늘은 꼭 확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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