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머리 독서법>을 읽고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한여름이라 한없이 더웠을 때인데도, 아직 몸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인지라 긴 카디건을 입고 외출을 했다. 모교의 YL (Young Learners) TESOL을 위한 면접이었는데, 내가 워낙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온 지라 아이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영어를 노출시켜주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과정이었다. 더위 속에서 혼자 긴 옷을 입고 외출을 하면서까지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니, 참 유별났다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일반적인 TESOL이 아니라, 어린이 대상의 TESOL이기에 좀 색다른 과목이 있었다.
바로 ‘Storytelling’이었다.
어린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자연스레 영어를 노출시키는 방식이었는데, storytelling 담당 교수님은 내가 지금까지 책을 읽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책 읽는 법을 소개해 주셨다.
책 표지만을 보고 다양한 질문을 유도하는 방법이 있었다. 표지의 주인공이 왜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왜 주변의 색깔은 이런지, 제목은 왜 이럴지 등등 책 표지의 그림 하나만으로도 다양한 주제의 질문을 던질 수 있었고 상상해볼 수 있었다. 책에 나오는 단어를 미리 뽑아, 요리조리 오리고 장식한 교구를 통해 단어를 미리 익히는 게임을 진행하는 방법도 있었다. 교사의 역량에 따라 단어를 활용한 퀴즈를 내거나 개인별 혹은 팀별 게임을 진행하는 식으로 재미를 유발할 수 있었고, 책의 대략적인 내용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책을 읽은 후, 책 내용과 관련한 미술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었다. 등장 인물들의 마스크를 만들어 보거나 컬러링 페이지를 만들어 색칠을 하는 등의 수업 말이다. 책을 읽은 후, 내용에 맞게 아이들이 연극을 할 수도 있었다.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해 내기 위해 아이들을 같은 책을 몇 번이고 읽어볼 기회를 자연스럽게 가지게 될 것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스토리텔링이기에, 선생님도 연극을 하듯 책을 읽어줘야만 했다. 아이들이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해서다. 교수님은 정말 디테일하게도, 아이들에게 책을 보여줄 때 가능한 글씨를 가리지 않도록 책의 가장자리를 잡으라는 충고도 덧붙였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책을 가지고 일주일 수업도 가능하다고 하셨다. 그래도 아이들은 지루해하지 않는다고도 하셨다.
영어를 가르치는 법을 배우러 왔는데, ‘독서’에 대한 충격을 받았던 첫 번째 사건이었다.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흥미를 갖고 갖은 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글씨도 얼마 없고 그림이 위주인 책인데도 말이다.
두 번째 충격은 Storytelling 외의 다른 과목 수업에서였는데,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영어 단어 테스트를 한 적이 있는데 어려운 단어는 많이 알고 있으면서 막상 일상 생활의 단어들은 생각보다 모르는 것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그때 들었던 독서에 대한 충격은 이랬다.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어려운 책 읽는 것을 장려하고, 쉬운 책 독서는 하찮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려운 단어를 더 많이 알고 있을 이유가 있을까.
뭔가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드는 배움을 얻기는 했는데, 막상 내 아이에게 배운 그대로 storytelling을 진행하기는 어려웠다. 배움은 배움이고 현실은 현실이구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시간을 보낸 지 벌써 몇 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읽게 된 ‘공부머리 독서법’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독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국어 교육에 대한 위기감은 많이 들었다. 국어 수업을 따로 하는 수학 학원도 있더라는 소문도 들었다. 아이들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공부머리 독서법’의 작가가 책을 제대로 많이 읽었기에 성적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는 직접적인 경험 탓에 책의 내용에 더 신뢰가 가기도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 성인의 문해력이 워낙 낮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접하고 있었기에 더 따라하고 싶은 책이었다. ‘제대로 된 독서’에 대한 갈망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기도 하니 말이다.
독서 지도할 때 명심해야 할 7가지
무엇보다 공감이 갔던 부분은 첫 번째, ‘재미있는 독서가 좋은 독서’라는 것이었다.
재미가 있으려면 어린 시절부터 독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storytelling 수업 시간에서 배웠듯이, 흥미를 유발하고 책과 관련된 경험을 계속 쌓아주면서 어릴 때부터 책이 재미있다고 느끼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면 좀 더 수월해질 것이다.
세 번째, ‘지식도서를 강요하지 않는다’도 마찬가지다.
영어도 지식도서 읽기를 권하고 그것이 더 잘하는 것이라고 부추기는 분위기 탓에, 막상 실생활에 쓰이는 영어 단어 익히기에 소홀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말이라고 다를까. 실생활의 감정이나 상황에 익숙해지기보다 학습적인 것만이 잘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면, 편향된 독서 습관은 물론이거니와 어휘력, 공감 능력, 사회성 역시 영향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다섯째,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늦게 접할수록 좋다’.
책 보다 재미있는 것을 먼저 알게 되면, 그것에 집중하고 빠져들게 되기 쉽다. 그래서 가능한 아이 앞에서는 스마트폰 보는 모습을 자제하려 노력하고 있고, 그 노력이 스마트폰에 대한 아이의 호기심을 늦출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자신이 아닌 조그마한 기계를 보고 웃고 있는 부모를 본다면, 어떤 아이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마지막, ‘천천히, 많이 생각하며 읽을수록 똑똑해진다’.
일을 할 때도 업무가 너무 많다 보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쳐내기 바쁘다. 의례 진행하던 그대로 넘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많은 일을 해냈다는 생각에 안심도 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쳐낸 것일 뿐 담당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곤 한다.
시간이 있어야 숨통을 틔우고, 되돌아보고 생각할 여유도 누릴 수 있을 테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 생각할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다양한 사교육에 To do list를 겨우 끝내고 조금 놀면 벌써 잠을 자야만 하는 시간이다. 창 밖을 쳐다보고 사색도 해보고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도 있어봐야 책을 읽으면서 생각도 해볼 수 있을 테다. 그런데 책을 얼만큼 읽었니 아직도 이 것 밖에 못 읽었냐며 잔소리를 듣는 아이가 생각하며 책을 읽을 리 만무하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글씨를 보는 것일 확률이 높다.
아이 교육에 대한 글을 읽을 때마다 답답하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이를 어떻게 아이에게 접목시켜야 할 지도 막막하고, 실천을 한다고 해도 아이가 잘 따라줄지도 미지수다.
그런데 한 가지 드는 부담은, 그럼 나는 독서를 제대로 잘하고 있는 것인가 이다.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누구를 가르치려 한단 말인가.
다시 한 번, 아이 교육이 어렵다는 결론만 내리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