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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Mar 29. 2020

앨리스만 떠날 수 있었던 여행

모범생의 길도 좋지만, 앨리스의 길도 좋다

아이와 함께 오랜만에 고전을 만났다. Alice in Wonderland.


레트로가 유행이라 그런가. 앨리스를 연기하는 올드한 느낌의 성우 목소리가 오히려 멋스럽게 들리는 오래된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며, 문뜩 앨리스와 앨리스의 언니를 생각해 본다.


언니가 읽어주는 역사책을 들으며 따분함에 졸던 앨리스는, 우연히 시선에 잡힌 하얀 토끼를 따라가게 되고 기상천외한 모험에 빠져든다. 모범생인 언니와는 다른 앨리스였기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문을 열어보고, 미지의 길을 따라 떠나고, 모두가 두려움에 떠는 카드 여왕에게 당돌하게 대든다. 


이 여행에서 앨리스는 무엇을 얻었을까. 그리고 이 모험을 계기로 앨리스는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아이가 등원을 하지 않는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다 보니, 뭔가를 가르쳐야겠다는 중압감이 들기 시작한다. 책은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편이었지만, 중고 사이트를 통해 전집 구매에도 관심이 생겼다. 예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이 나이에는 이런 전집을 읽어야 한다’라는 류의 조언에도 귀가 솔깃해지고, 자연 도감이나 위인 전집이 아직 책꽂이에 없음에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규칙적인 생활을 만들어주겠다는 이유로 매일매일 함께 하는 것들도 생겨난다.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잘 따라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하루 종일 노는 가운데 몇 십분 정도일 뿐이다. 


놀아주기만 할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의 아이를 발견한다.


선생님이 가르칠 때와 엄마가 가르칠 때의 차이가 분명 있겠지만, 어떻게 접근하면 아이가 이해를 잘하는지, 주제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을 때 어떻게 주제로 다시 데려와야 하는지, 틀렸을 때는 풀이 죽지 않게 어떻게 일으켜줘야 하는지 나도 역시 배운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유치원에 가서는 그리고 학교에 가서는 어떤 모습일지 말이다.




모범생이었던 앨리스의 언니는 어른들의 주목을 받는 학생이었을 것이다. 정반대 성향의 앨리스는 통제하기 어려운,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고 질문도 많고 감정의 기복도 심한 골칫덩어리일 확률이 높을 테다. 말을 잘 듣고 많이 가르칠 필요 없이 스스로 알아서 해내는 아이들을 칭찬하는 이유는, 어쩌면 어른들이 편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이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어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가르치기도 쉽다. 어른들이 아는 것을 아이도 잘 이해한다면, 앞으로의 아이의 미래 역시 예측이 가능하기에 이런저런 잔소리도 가능하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안심이 되기도 할 테다. 부모가 가봤던 길이기에 조언해줄 수 있고, 이끌어줄 수 있고, 안전하다는 이유에서 일 테니 그런 부모의 태도가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모험을 떠나고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하는 캐릭터는 대개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부러워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걷는 길 이외의 방법으로 걸어갔다.


다시 등원하게 되는 때가 오면, 아이는 어떻게 적응하게 될까. 그리고 모범생의 길을 가게 될까 아니면 앨리스의 길을 가게 될까. 


아이가 모범생인 것처럼 부모의 마음이 편한 상황도 없을 테지만, 누구나 가는 길 외의 다른 길을 택한다고 한들 실망하기보다는 더 풍성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믿어줄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고자 한다. 앨리스의 길도 좋다고 말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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