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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Oct 20. 2021

아메리카노 같은 책 쓰기

몇 년 전,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요즘 책은 아메리카노 한 잔과 같다고.


오랜 수련과 어려운 과정을 통해 등단을 해야지만 내 이름이 새겨진 책 한 권이 태어나는 시대는 더 이상 아닙니다. 어느 때보다도 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자 하는 움직임이 커졌고, 글을 쓰는 형식도, 책이 만들어지는 방법도, 책을 보는 방법도, 모두 다양해졌으니까요.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입니다. 진입장벽이 낮아진 만큼,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집니다. 덕분에 누구나 (비교적) 쉽게 책을 쓰고, (비교적) 쉽게 책을 읽고, (비교적) 쉽게 책을 소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쓰고 읽는 것은 매일 즐기는 아메리카노 한 잔과 같다는 말이 나온 것 같았습니다. 책 한 잔 이라고나 할까요?


당시, 저는 이 말에 동의했습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무거운 주제에서 벗어나 실용적인 이야기를 다룬 책들도 훨씬 많아졌어요. 쉬운 아메리카노 한 잔처럼 말이죠. 그렇다고 절대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스쳐 지나갈 법한 주변 상황들을, 책 한 권이 나올 법한 분량으로 생각해보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반가운 일이죠. 


그런데 막상 제가 책을 쓰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 책 쓰기는 더 이상 아메리카노 한 잔과 같이 편하고 쉽지는 않았습니다. 출판사를 통해 종이로 된 책이 나오는 것은 나에게만 어려운 일인 것 같았습니다. 잡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잡지 못하는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내 생각과 내 글 그리고 그에 소비되었던 시간들 모두가 아무것도 없던 일로 변해 사라져 가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끈질기게 품고 있는 집념은 언젠가는 현실이 되어 내 것으로 오는 것인가 봅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마저 떠나보냈는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인연이 닿았으니까요.


처음에는 그저 내 책이 서점에 예쁘게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의미 없이 베어지는 나무가 떠올라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출간을 앞두고 ‘교정본’이라는 것을 넘기며, 내가 생각하는 ‘아메리카노 같은 책’이란 무엇인지 떠올려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오늘의 세 번째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습니다. 


저에게 아메리카노처럼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다른 음료는 없습니다. 카페인 중독이 걱정된다며 이런저런 차를 구비해 두었지만, 디카페인 커피를 찾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끊을 수가 없어요. 아이를 따라다니며 기력이 없을 때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것도, 음악 듣는 시간을 더 분위기 있게 만들어주는 것도, 글을 쓸 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습관처럼 손에 들고 있는 것도 모두 커피, 그것도 아메리카노예요.


저에게 이제 아메리카노는 '가볍다', '쉽다'를 상징하는 단어라기보다는 '내 생활에 플러스가 되는', '힘을 주는' 단어입니다.


다음 달이면 세상에 나오게 될 제 책이, 아메리카노 같은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좋아하는 책이 세상에 있을까 싶지만, 분명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고 활력을 더해줄 수 있는 책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리 엄마들에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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