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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Oct 01. 2016

그 자리의 그 사람

혹은 그 사람의 그 자리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아무래도 본인이 쓰게 된 소위 ‘감투’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기 때문일텐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감투’는 마치 똑같은 사람을 만들어내는 모자 같았다. 부장님 캐릭터, 팀장님 캐릭터 등 이렇게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는 정형화된 직급의 모습이 있듯이, 놀랍게도 그 위치만 되면 같은 특성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원래 어떤 성격의 사람이었는지는 소용이 없었다.


그만큼, 본래의 성향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기대감과 의무감이 생기는 탓일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누군가에게 쓴소리를 잘 못하는 사람이 관리자의 직급이 되어 맞지 않은 역할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사회적인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까 심리적인 부담감을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밑에 직원들과의 관계도 조금은 멀어진다. 위로 올라갈수록 외로운 길을 걸어간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나를 지키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동에 더 많은 비중을 들이게 되기 쉽다. 때문에 ‘감투’를 쓰는 것은 결코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니다. ‘감투’를 많이 쓴다는 것은 능력이 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지만, 그만큼 큰 의무감으로 쉽지 않은 미래가 펼쳐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본인이 쓴 ‘감투’만 믿고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주변 사람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못하는 행동을 하면서, 언제까지 그 감투를 쓰게 될지 예측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헌데, 그 감투는 꼭 회사에서만 쓰게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상 생활에도 내 자리가 있다. 학생이라는 자리도 있고, 누군가의 아들, 딸이라는 자리도 있다. 직업으로서의 자리도 있고, 그리고 엄마, 아빠 즉 부모의 자리도 있다. 


생각해보면, 태어나서 쓰는 첫 감투인 ‘학생’ 시절부터, 우리는 주변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고자 꽤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아왔다. 학교에 가게 되었으니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공부도 잘 해야 하는데, ‘참 잘했어요’ 도장을 못 받았을 때의 좌절감.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 자체가 적어 당연한 결과였지만, 어쨌든 잘 나오지 못한 성적 때문에 느끼는 장기간의 죄책감. 모두, 주변 사람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못했다는 점에서 오는 스트레스다. 사실 난 공부를 못 하는 아이일 수도 있는데. 지금 ‘참 잘했어요’ 도장을 못 받아도, 인생에서 아무 의미 없는데.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큰 탈 없이 다양한 감투를 수행하며 살아온 것 같다. 그 험난하다던 사춘기도, 내 마음대로만 행동할 수 있다던 대학생 시절도, 업무를 제외하고도 다양한 인생 수업을 받았던 직장 생활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무난하게 흘러갔다.


당황스럽게도, 엄마라는 감투가 생기자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주변의 기대치가 높아졌다. 그런데 그 기대치는 내가 미리 그려놨던 계획에 없던 것들이다. 우선, 아이를 돌보느라 일을 그만두게 될 줄 몰랐다. 내 인생도 아직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불안한데, 엄마 아빠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그 의무감에 가끔은 가슴이 막힌다. 집에 있으니까 살림을 잘 해야 한다는 기대치가 감당하지 못 할 정도였는데, 그렇다, 잘 못한다. 난 살림 잘 못한다고, 그런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넘어가고 싶은데,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행동이라 부끄러워해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든 내 시간을 확보하고 내 인생도 유지하고 싶은데, 그것도 악바리여야만 가능할 것 같다. 인생의 사춘기는 10대가 아니라, 지금인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감투가, 그리고 한 단계씩 올라가는 단계가 모두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좌지우지되어야 한다면 그 감투 다 벗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내가 그 기대감에 못 다다를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으면 좋겠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주변 분위기에 억지로 끼워 맞춰야 한다는 것, 정말 쉽지 않다. 그런 일이 힘들어도 성실하게 수행하다 보면, 그 모습이 진짜 내 모습으로 비치기도 하고 앞으로도 그 모습대로 계속 행동해야 할 수도 있다. 


자리가 그 사람을 만든다기보다는, 그 사람에 따라 자리가 바뀌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면 어떨까. 새로운 감투가 생겼을 때의 부담감보다는 즐거움이 더 커질 것 같다.


조금씩 나만의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고자 한다. 못하면 못하는 것이고, 대신 잘하는 것은 더 잘하면 된다. 그렇게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엄마의 모습, 사회인의 모습, 아내의 모습, 딸의 모습으로 유쾌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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