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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Oct 02. 2016

얼마나 믿고 있나요

나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아이의 비염 증세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었다. 격주에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하여 약을 처방을 받는 상황이 되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의사는 아직 초기 증상이기 때문에 약을 세게 쓸 상황이 아니라고 했고, 코 안쪽이 부어 있으니 피가 날 수도 있다며 아이의 코를 빼주지도 않았다. 아이가 이렇게나 답답해하는데, 코를 빼주지 않는다니! 가습기를 열심히 틀으라는 교과서적인 발언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약을 먹이면서도, 이제는 의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 지 거의 두 달이 되어가는 터다. 화가 났다. 큰 병원에 예약해서 제대로 검사를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병원을 다녀온 날 저녁, 책장의 온갖 책을 다 꺼내놓는 아이 탓에 남편이 우연히 (숨겨져있던) 소아 건강과 관련된 두꺼운 책을 붙잡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코 증상에 대한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코를 빼주는 것을 지양한다고 했다. 그 이유들을 함께 읽으며 살짝 얼굴이 붉어지는 가운데, 평소에 가습기를 틀어 건조한 공기로 숨 쉬게 하지 말라는 조언까지 만나자 부끄러워졌다.


엄마가 되면 아이의 약봉지 뒷면에 기재된 약의 종류와 성능들을 자연스럽게 숙지하게 된다. 그리고 병원이 바뀌면 의사가 어떤 성향인지, 약의 보관 방법에 따라 병원은 어떤 강도의 항생제를 쓰는지도 알 수 있다. 이런 정보들을 지역 내 엄마 커뮤니티에서 주고받기도 한다. 내가 이 병원을 선택했던 이유는, 전에 다녔던 소아과보다 약한 항생제를 쓰거나 가능한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약을 많이 먹이지 않는 편이 옳다고 믿고 있었기에, 이 점이 좋았다. 그리고 질문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사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친절하게 이야기해주는 편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이 의사에게 아이의 건강을 맡기기로 결정을 했으면, 끝까지 믿고 따르는 것이 옳았다. 약을 먹이면서도 믿고 먹여야 했고, 가습기를 틀라고 했으면 틀어야 했다. (안 틀었다, 가습기..) 시키는 것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과연 낫기나 할는지 의심하며 먹이는 약을 삼키는 아이가 빨리 낫지 않는게 어쩌면 당연했다.




스타트업을 준비하다 보니, 바로 옆에서 혹은 건너 건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믿었던 업체가 일을 마무리하지도 않은 채 연락 두절이 된 사연. 하하호호 동업을 시작했다가 금전적인 이슈가 생기자, 자신이 더 많은 일을 했다며 더 많은 대가를 요구하고 분열이 일어나는 경우. 열정으로 함께 일을 시작하기로 했으나,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기간이 늘어나자 사업 자체가 흐지부지 되는 경우 등 부정적인 에피소드들이 난무하다 보니, 일을 하면서 상대방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해본다. 엄청나게 돌다리를 두드려가면서 결정한 것일 텐데, 일을 함께하기로 한 후에도 얼마나 상대방에 대해 재고 있었던 것일까. 언제까지 서로 의심하며 테스트를 해보려고 했던 것일까.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하는 것이 똑똑하고 야무진 행동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특히, 일을 할 때 말이다. 물론, 당연히, 쉽게 믿고 의지하면 절대 안 되는 시대다. 그러기에 믿는다는 말도 쉽게 나오지 않는 세상이다. 믿고 맡겼다가 고생했던 경험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확신을 갖고 함께하기로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계속 의도적으로 의심을 하게 된다면, 이 것만큼 내 마음을 갉아먹는 일도 없다. 결과도 좋지 않다. 상대방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체크하느라 내 시간과 체력 다 소비했는데, 진도가 제대로 나갈 리 만무하다. 서로 맞춰가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는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상대방을 믿기로 결심하는 과정은, 그 상대방과 앞으로 함께 일을 진행하게 될 과정 못지않게 신중해야 하는 업무다. 믿을 수 있는 상대방인가 알아보고 서로 맞춰가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일의 동업자도 그렇고, 내 아이의 건강을 맡기는 의사도 그렇고, 나만의 멘토를 찾는 일도, 내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는 일도 모두 그렇다. 


일단 맏기로 했으면, 끝까지 후회 없이 믿어보자. 그리고 쫓아가고 따라하고 들어보자.


비용을 들여가며 재테크나 업무 등의 컨설팅을 받는 일이 있다면, 믿고 따라가자. 시키는대로 하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인지, 중간에 의심하거나 멈추지 말고 끝까지 가자. 따라하고 싶은 멘토가 있다면, 믿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따라해보자. 같이 일하기로 결정한 사람이 있다면, 함께하는 것이 즐거움이 될 수 있도록 믿어보자. 결정했으면 해보자. 어설프게 이곳저곳 양다리 걸치는 행위는, 내 믿음을 분산시켜 이도저도 실행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갈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는 믿음이 없는 피상적인 관계일 뿐이다. 아무 사이도 아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얼만큼이나 믿음으로 연결된 사람들일까.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높이는 일이야 말로 가장 큰 인생의 응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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