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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Mar 06. 2017

누구나 자기만의 지혜가 있습니다

인테리어 정보를 검색하기 위해, 관련 블로그들을 정독하던 날이었다.


우연히, 호텔처럼 수건을 접는 방법을 소개한 글을 클릭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소재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나 싶어 신기했다. 쓸데없는 관심인 것 같았다. 수건 접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지, 간단한 일상을 얼마나 과장해서 올렸길래 이렇게 많은 조회수와 댓글을 얻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읽어보고 넘어가기에는 궁금했다. 도대체 뭐길래.


화면을 내려가며 사진과 글을 읽어 볼수록, 우리 집 수건도 똑같이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쉬우면서도, 자랑하기 좋은 비주얼을 연출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이 정보를 올리기 위해 들인 노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호텔에서 접힌 수건을 천천히 펼쳐보았을 것이고, 주름 그대로 다시 접어보았을 것이다. 이 과정을 여러 번 거쳤을 것이다. 집 수건으로도 접어보면서 각 과정마다 사진을 찍기 위한 연출도 필요했으리라.


이쯤 되면, 별 것 아닌 소재가 아니다. 별것 아닌 소재였다 하더라도, 여러 사람들이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의미 있는 소재로 변한다.


이렇듯 누구나 의미있는 자신만의 ‘비법’이 있다.


대화를 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나만의 비법, 아이의 입맛을 돋우는 맛깔난 간식을 만드는 비법, 오래 소장할 법한 책을 고르는 비법, 아이가 있음에도 집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비법 등 그 비법의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클릭 몇 번 하다 보면 SNS를 통해 기꺼이 자신만의 비법을 공유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 노트북 창을 바라보며 고맙다는 말을 무한 반복할 때도 있다. 육아 관련 고민은 특히 더 그렇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비법이라는 것이 사소한 것이라는 점이다.


김치를 안 먹는 아이가 유독 어린이집 깍두기는 잘 먹는 이유는, 매실 한 스푼 덕분이었다. 집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비법은 수시로 버리는 것이었다. 크레파스로 낙서된 벽지가 원상 복귀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 아닌 지우개였다. 옷에 묻은 음식물 흔적은 설거지 세재로 살살 문질러주면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다. 


전문가의 영역이라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똑같았다. 즐겨보던 요리 프로그램이 있었다. 셰프들이 요리를 하는 중간에, 이번 요리에 들어가는 자신만의 비밀 무기를 공개하는 코너가 짧게 등장하는 형식이 재미있었다. 헌데, 그 비밀 재료들을 볼 때마다 늘 실망스러웠다. 항상 ‘어이없는’ 재료들이, 이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어주는 비결이었기 때문이다.


비법이 사소하다 못해 어이없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일상생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는 특별하고 거창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인 듯싶다. 또, 그 정도의 무게감은 있어줘야 비법을 공개할 때 생색내기에도 좋기 때문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어찌 보면 우리가 별 것 아닌 것의 본질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장인의 비법이든 주변 사람들의 비법이든 대부분의 비법들에 매번 허탈함을 느끼는 것 같다.


매일 자연스럽게 만지고 사용하고 있는 것들에 어떠한 특별함이 숨겨져 있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평소처럼만 사용하면 그만이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사실, 그럴 시간도 없다. 그저 다른 시선으로 꾸준히 관찰하고 애정을 보여준 사람에게만 감추어진 장점이 보일 뿐이다. 그래서 ‘전문가’라는 말이 있는가 보다. 남들이 잘 보지 않는 것을 파고드는 사람 말이다. 아쉬운 점은,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데에 인색한 분야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색한 분야는 다름 아닌 주부들의 분야인 살림과 육아가 아닐까 싶다. 살림과 육아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어느 정도 연관을 갖고 생활하고 있기에,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니깐 특별하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그래서일까. 종일 당연한 일만 하고 있는 탓에, 주부들의 경우 본인들의 일상도 당연하고 잔잔하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한다. 보통의 비법들이 당연한 것에서 발견되듯, 당연해 보이는 육아와 살림에서도 많은 비법과 지혜가 발견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 역시 엄마들의 비법과 지혜로 지금의 모습처럼 클 수 있지 않았는가.


육아와 살림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어제와 다름없는 아침이라 하더라도 매일 반복되는 하루에서 얻은 나만의 사소한 비법 덕분에 나도 모르게 수월하게 출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내가 평범하다거나 혹은 그보다 못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면, 스스로가 얼마나 많은 삶의 지혜를 갖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적어봐도 좋겠다. 우울할 때 기분이 금세 밝아지는 자신만의 비법이 있다면 더 좋다. 그렇게 스스로가 멋지게 나이 들고 있는 사람임을 느꼈으면 좋겠다. 


이미, 지혜로운 사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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