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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Mar 08. 2017

세탁기에서 하늘을 꺼냅니다

빨래는 늘 몰아서 하는 편이다. 


지구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물을 아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가끔씩 많은 양의 옷들을 한꺼번에 빨 때면, 빨랫대에게 미안해질 정도다. 이런 날은, 세탁기에서 옷들을 꺼내는 것도 일이다. 세탁기의 문을 열기 전에 심호흡을 먼저 한다. 열자마자 쏟아질 세탁물들을 바닥으로 떨어뜨리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친다. 기다렸다는 듯이 우수수 흘러나오는 옷들을 하나씩 털어 빨랫대에 너는 작업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빨래 끝’이라고 기지개를 켜며 상쾌해하는 주부들의 모습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래를 기분 좋게 꺼낼 수 있는 이유는 은은하게 다가오는 세제의 향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자연의 향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향수를 끊은 지도 오래되었다. 제아무리 자연의 향을 담은 향수라 하더라도, 자연 본연의 냄새를 고스란히 담기는 어렵다. 같은 이유로 캔들도 켜지 않은지 한참 되었지만, 세제의 향은 끊을 수가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의외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반전 때문이라는 추측이 든다. 더러워진 옷들이 세탁기를 거치면서 향기를 품으며 나오는데, 반전이지 않은가.


세탁기의 반전은 또 있다. 잊고 있던 물건을 찾아주는 반전이다. 세탁기에서 하나 둘 옷을 꺼내고 있노라면, 아이가 울면서 찾았던 스티커가 흐물거리며 등장한다. 지폐가 아니라 매우 아쉽지만, 동전 몇 개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오기도 한다.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라도 산삼을 발견한 것 마냥 기쁘다. 물론, 달갑지 않은 물건이 나오기도 한다. 한 번은 아이의 기저귀를 옷과 함께 세탁기에 넣어 돌리는 바람에, 젤리처럼 생긴 흡수제들을 털어내고 다시 세탁기를 돌리느라 고생한 적도 있으니 말이다.


세탁기를 통해 나오는 또 다른 반전의 결과물로는 ‘신’이 있다.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서, 신의 딸 ‘에아’가 인간의 세계로 나오는 연결고리가 바로 세탁기이다. 신이 세탁기에서 나오다니. 엉뚱한 상상력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지막 날을 알게 되었을 때의 다양한 반응을 보여준다. 살아갈 날이 아직 몇 십 년이나 남았다며 위험천만해 보이는 행동을 계속 시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직장을 그만둔 채 하늘을 보고 새를 따라 떠나기도 한다. 며칠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진짜 사랑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일탈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체념하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마지막을 대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뒤로한 채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결론의 반전은, 인생의 마지막 날을 정해놓은 시스템이 모두 초기화되어 모두가 새롭게 다시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세탁기를 통한 반전의 결과물은 대부분 긍정적이다. 그래서일까. 세탁물이 나오기까지 소요되는 1시간 남짓의 시간 역시 즐겁다.


세탁기 옆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사실 특별한 무언가를 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다. 그렇다고 마냥 멀뚱거리고 있기에는 아까운 시간이다. 짧지만 뭔가는 해야 할 것만 같은, 덤으로 생긴 시간인 느낌이다. 덜덜덜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커피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펼쳐나가다 보니, 잠깐이나마 진지해질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 같아 즐겁다.


생각해 본다. 나에게도 반전의 시간이 올 수 있을까. 반전을 기대한다는 전제 조건은 지금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여기는 것일 텐데, 자신의 상황은 매사 생각하기 나름이니 나쁘다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반전이라는 순간은 아예 올 수 없는 상황일까. 


반전까지는 아니어도 원하는 것이 있다면, 하늘을 보는 것이다. 아이와의 시간에 충실해지려면,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내려다보거나, 같이 앉아 있거나, 안아주면서 시간을 보낸다. 아이가 기관에 간 시간은,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었던 일들을 몰아치기 위해 정신없이 흘러간다. 앞만 보고 간다. 그렇게 일과를 마치면, 어느덧 아이와 잘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다. 분명 해가 떠서 환한 일상을 누렸는데, 막상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이 맞는지, 해가 구름과 함께 진짜 하늘에 떠 있기는 한 것인지 확인해 본 적이 언제였더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는 표현이 있다는 의미는, 그만큼 우리가 숨을 길게 쉬지 않는다는 것 같다. 보통, 잘 때가 되어서야 긴장을 풀고 조용한 시간을 가지는데, 그마저도 핸드폰에게 기회를 빼앗겨 버리고 만다. 언제든지 누리라고 기다리고 있는 하늘인데, 외면하고 지내곤 한다.


새삼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을 무엇에 빌려주고 있는 것일까. 


날씨가 흐릿해지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평소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나서야 햇살이 아쉬워진다. 대부분의 일상이 햇살과 함께하지만 그때는 당연한 것일 뿐이다. 없어져야 소중하다.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시간 역시 평소에는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었다가, 이렇게 새삼 아쉬워져야 알게 된다. 놓치고 있었음을 말이다.

 

지금 돌리고 있는 세탁기의 반전 결과물은, 그래서 하늘이었으면 좋겠다. 딩동 딩동 빨래가 다 되었음을 알려주는 멜로디가 끝난 뒤 세탁기의 문을 열었을 때, 하늘의 맑은 향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손에 닿는 빨랫감의 온도는 차갑다기 보다는 파란 하늘처럼 청량하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티끌 없이 깨끗하기만 한 하늘보다는 더러 구름도 있는 하늘이 푸근하듯이, 양이 많을지라도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의 빨랫감이 상쾌하게만 다가왔으면 좋겠다.


하늘을 볼 시간을 놓쳤을 때, 그때는 이렇게 세탁기에서 하늘을 꺼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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