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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Mar 12. 2017

공항으로 떠나는 여행

감성적인 친구가 한 명 있다. 커피숍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한 문구를 보고 갑자기 내가 생각났다며 나올 수 있냐고 묻는 그런 친구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것은 나 또한 그런 사람이라는 의미다. 남편이 느끼기에, 연애할 때는 매력포인트였으나 결혼 후에는 이상하다고 느끼는 나의 성격 중 하나는 냄새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었다. ‘아~ 추석 냄새다~’ 혹은 ‘이 냄새는, 4학년 때 공강인 교실에 혼자 앉아 창 밖을 쳐다보며 맞았던 바람 냄새야’ 라며 얘기하는 식이니, 남편 입장에서는 이렇게 특이한 괴짜도 없다.


이러한 감성 괴짜가 좋아하는 여행은 다름 아닌, 공항 리무진을 타고 떠나는 인천 공항 여행이다.


공항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삼삼오오 모여있는 수많은 사람들 모두 ‘설렘’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왁자지껄 하는 곳이 바로 공항이다. 대부분의 경우, 떠나기 몇 개월 전부터 여행 계획을 짠다. 가장 중요한 비행기 티켓 예약부터 시작해서, 어느 숙소에서 묶을 것인지, 가서 어떤 음식을 먹고 무엇을 쇼핑할 것인지, 누구를 만날 것인지 등을 구상하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이미 몇 번이고 여행을 다녀온 것이나 다름없는 익숙함이 자리잡기도 한다. 하지만, 설렘이 시작되는 공간인 공항에 도착하면 다시 새로운 출발선상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 날은 친구, 동료 혹은 가족들과 함께 나누던 설렘이 아닌 처음으로 혼자서 공항을 방문하던 날이었다. 연애하던 시절, 출장을 다녀온 지금의 남편을 마중 나가는 길이었다. 크고 무거운 여행 가방 없이 가벼운 핸드백 하나 들고 공항 리무진을 탔을 때의 기분이란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설렘이었다. 마치,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심리적인 의지 없이,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가상의 책임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책임감마저 손에 들고 있던 핸드백 마냥 가벼웠다. 리무진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한강의 모습과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다리를 보며 설렘은 배가 되었다. 그렇게 도착한 공항의 공기는 흥분의 냄새였다. 며칠 만에 만나는 남편을 향한 반가움보다는, 그렇게 공항으로 향하는 불과 한 시간 정도의 여행이 더 가슴 뛰었다는 것은 지금에서야 겨우 말할 수 있게 된 비밀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공항에 있는 프랜차이즈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행사를 했다며, 쿠폰을 들고 혼자 다녀왔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함께 있던 친구들이 유별나다는 반응을 보일 때 혼자 덤덤한 반응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몇 년 전 인천 공항으로 혼자 떠났던 느낌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동네 매장에서도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을 굳이 공항까지 가서 먹고 싶은 친구의 마음이 당시의 내 마음과 연결이 되었다. 아이스크림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이 중요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 공항으로 향하며 느꼈던 설렘은 ‘혼자’라는 상황보다는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떨림이었던 듯싶다. 


‘진짜 어른’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살림을 꾸려가는 독립이야말로 진짜 어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아니면, 부모의 입장이 되고 난 후에야 진짜 어른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혹은,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어야 진짜 어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통점은 모두 부모의 도움 없이 혼자서 내 앞가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항에 혼자 간다는 것은 익숙한 공간에서의 내 앞가림이 아닌, 머무는 상황 조차 낯선 곳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는 길로 떠나겠다는 뜻이니, 가장 고난도의 도전 아니겠는가.


혼자 공항으로 향하며 이러한 도전의 스릴감을 몇 번 맛보게 되자, 공항에만 머무는 것을 넘어 진짜 떠나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출국하는 사람들의 뒷배경이 되는 것, 이륙하는 비행기를 쳐다보는 것만으로 공항에서의 일과를 마무리하기에는 혼자 즐기는 공항 놀이가 슬슬 지겨워진 탓도 있었다.


그렇게 떠났던 혼자만의 첫 비행은 비행기 시간을 놓치는 큰 실수로 시작되었다. 하는 수 없이 다음 비행기 시간까지 공항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쇼핑을 그다지 즐기지 못하는 성격 탓에 몇 시간 동안 면세점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있자니, 시작도 하기 전에 시차를 경험하는 듯한 피곤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꼬여버린 스케줄 탓에, 경유지로 들른 홍콩 국제공항에서는 사람 구경도 지겨워 잠이 올 지경이었다. 새벽에 도착한 방콕은 무서웠다. 다행히도 공항이 한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행가방을 질질 끌고 택시를 잡으러 나온 공항 밖의 풍경은, 내 발걸음을 바로 다시 공항 안으로 향하게 했다. 초조함과 무서운 감정은 꾹 감춘 채 아무렇지 않은 듯 공항을 누비며 호텔까지 갈 방법을 모색하던 중, 공항에서 운영하는 택시 서비스를 발견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차종을 선택할 수 있는 데다가 보험료도 포함되어 있었고 미리 금액을 지불하고 출발하는 비교적 비싼 택시였지만, 새벽에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면 아깝지 않은 금액이었다.


이튿날부터는 친구의 도움으로 시행착오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었지만,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의 과정은 이런 버라이어티가 따로 없었다. 우아하게 간단한 짐과 티켓 한 장 손에 쥔 채 방콕 공항까지 오면 그만이었을 여행이, 비행기 시간을 놓치면서부터 나비효과처럼 뜻하지 않은 모험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험 속 도전들을 무사히 마쳤다. 해냈다.


재미있는 점은, 공항까지만 갔던 혼자만의 여행이 결국 진짜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공항까지만 갔던 발걸음은 실제 아무 의미가 없던 발걸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연습을 했다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미리 예상했던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하하호호 즐거운 상상만 하면서 연습했던 설렘 조차 내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데, 해도 되는 것일까, 꺼내도 되는 것일까 몇 번이고 망설이는 꿈이라면 오죽할까. 


하지만, 작은 성공자의 발걸음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큰 성공자가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기에, 의미 없어 보이는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반복하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목적지 없이 단순히 공항으로만 떠나는 여행도, 분명 진짜 여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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