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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Oct 17. 2017

별 거 아니네

내일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해도 너무 불안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느닷없는 불운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마음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차분히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일이다. 다만 현재에 충실하면 그뿐.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사실 별 문제도 아니었네.”

-지민석 [어른아이로 산다는 것]


독감주사를 맞으러 병원을 방문한 날이었다.


주사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을 때는 용감하게 팔을 들이대고 눈 한 번 깜빡하지 않더니만, 청진기를 귀에 꽂고 제법 의사 흉내를 내던 너는 이제는 주사가 무섭다고 했다. 그렇게 병원에서 한참을 징징대며 대기하던 중 우연히 같은 반 친구를 만나자, 서로 주사에 대한 설전을 벌이더구나. 너는 주사는 맞으면 많이 아프기 때문에 싫다고 했고, 친구는 긴장하는 모습으로 ‘여기에는 주사가 없어!’라며 주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다. 주사에 대한 너희들의 공포가, 미안하게도 엄마는 너무 귀엽고 재미있었다.


너의 이름이 불려졌고, 너는 의자에 앉기도 전에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느라 주사 바늘이 팔에 들어가는 느낌조차 느낄 새가 없었을 듯한데, 막대사탕 하나를 받더니만 쉽사리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나오며, 같은 반 친구 앞에 똑바로 서더니만 대단하게 말하더구나.


“4살도 주사를 맞아야 하는 거야!”


유치원생은 물론이요 초등학생들도 꽤나 바글거렸던 넓은 소아과에서 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민망함은 엄마가 감당하면 그만이었다. 너의 그 근엄한 표정과 목소리만 들으면, 두 자릿수 나이는 되는 선배가 후배에게 말하는 것 같더구나. 


그래, 넌 해봤다 이거지.

그렇게 무서워하더니만 막상 해보니 별 것 아니었지?


실제로 해보면 별 것 아닌데, 시작을 해도 될 것인가 조차 큰 결심을 해야 하는 경우가 참 많다. 


경험해보지 못한 내일과 미래를 걱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나간 과거는 이미 잘 알고 있기에 자랑스러운 마음이거나 속상한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고, 이런저런 기준으로 평가하면서 결론을 지을 수 있다. 현재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 혹은 내가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어영부영 지나가기 쉽다. 하지만,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만 할 뿐이다. 예측은 말 그대로 짐작한다는 것일 뿐, 알 수가 없기에 불안한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불안하기 때문에 이것저것 준비한다고 하지만, 막상 미래에 하고 싶은 바로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보다는 한 발자국 물러난 것들을 신경 쓰며 걱정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지는 않나 싶다. 주변만 맴도는 느낌이랄까. 하고 싶은 것은 A이지만, A로 바로 직행하기에는 자신이 없고 많이 부족하다는 두려운 생각. 그래서 잘 모르겠으니 언제 올 지 모르는 다음 기회에 가는 것이 좋겠다는 회피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잘 알지 못해서 불안하기에 주변의 많은 조언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 조언을 통해 커다란 시행착오를 건너뛸 수 있는 지혜가 있으면 너무 좋으련만 그 역시 쉽지는 않더라. 그리고 그 조언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조언을 하는 사람과 조언을 받는 사람이 동일한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고 같은 레벨에 있다면 그 조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경험의 차이는 정보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지혜의 차이를 갖게 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의 경험담은 말 그대로 조언일 뿐 내 것이 아니기에 제대로 알 수 없다.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듣기만 해서는 결코 안되며, 조언자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하더라도 내가 직접 해 보아야만 나의 것이 되더라. 직접 부딪혀 보는 것이야 말로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말일 듯싶다. 


어쩔 수 없다. 해야 하는 것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주변만 맴돌지 말고 바로 그 목표를 향해 갔으면 좋겠다. 정면돌파 말이다. 잘 모르겠다면서 근처만 빙빙 돌다가는, 계속 모르는 상태만 지속될 뿐이다. 


일단, 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고 자신 있게 너의 경험을 얘기해주면 좋겠다. 잠시나마 그 자신감에 취해 큰소리로 자랑해봐도 좋다. 그게 시작일 테니 말이다. 


막상 해보면 안다.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였네. 별 거 아니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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