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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Oct 23. 2017

내 것이 될 수 없는, 비교의 시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하기로 했다.
화장기 없는 내 얼굴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인간관계도
창피해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가 좋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게 좋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발전하는 내가 좋다.

-조유미 [나, 있는 그대로 참 좋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엄마 때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였고, 지금은 있는지 모르겠지만 ‘실과’라는 과목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은, ‘실과’ 과목의 바느질 수업을 위한 준비물을 처음 챙겨 오는 날이었다. 


준비물로 챙긴 빨간색 직사각형 상자 안에는 다양한 색감의 실과 바늘, 몇 개의 단추들, 의미 없는 작은 천 몇 조각, 줄자 그리고 삼각형 모양의 얇은 초크가 하나 들어있었다. 학교 준비물은 의례 같은 곳에서 같은 제품을 구입하듯, 반 친구들 책상 위에 놓인 준비물은 모두 똑같은 그 빨간색 바느질 상자였다.


엄마의 빨간 상자 안에 들어있던 초크는 분홍색이었다. 초크는 천에 바느질할 부분을 표시하기 위해 선을 긋는, 분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삼각형 모양이면서 두께가 얇았던 탓인지, 가방에 넣을 때는 예쁜 삼각형 모양이었던 초크가 가방에서 꺼낼 때는 세 조각으로 깨져있었다.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질 만큼 그렇게 약했던 초크였다. 속상했다. 


친구들의 빨간 상자들을 슬쩍 훑어보니, 유독 제일 친한 친구의 초크가 분홍색이었다. 질투가 났다. 부서진 내 초크를 볼 때마다 내 마음마저 산산조각이 난 것처럼 아팠고, 친구의 온전한 모양의 분홍색 초크에 자꾸 시선이 갔다. 초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제대로 몰랐던 상태에서, 이 초크 하나 때문에 바느질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엄마도 온전한 삼각형 모양의 분홍색 초크를 갖고 싶었다. 첫 번째 바느질 수업을 마치고 정리하는 시간이 다가오자, 가슴을 졸이며 아주 조심스럽게 내 것을 친구 앞으로 밀어 두고 그 친구의 빨간 상자를 내 가방에 넣었다. 모두가 똑같은 바느질 상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그토록 강렬히 원했던, 온전한 삼각형 모양의 분홍색 초크를 다시 갖게 되었다. 이 예쁜 초크가 내 것이다라는 행복감은 헌데 사실 오래가지 못했다. 오히려 불안했다. 집에 와서 꺼냈던 친구의 빨간 상자 뒷면에는 큰 글씨로 친구의 이름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허무했다. 바로 그 날, 집으로 오는 도중 친구의 삼각형 초크 역시 깨져버렸던 것이었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친구들의 초크도 다 깨져갔다. 그리고 초크의 역할은, 깨져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쓸데없는 비교의 결과로 불안함을 얻었던 엄마는, 그 학기 내내 실과 시간이면 빨간 상자 뒷면의 친구 이름이 보이지 않도록 고심하느라 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쓸데없는 그리고 가끔은 어이없다고 여겨지는 비교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잡지 속 트렌디한 옷차림의 모델 그리고 20대의 건강한 피부와 나를 비교하며 슬퍼한다. 추억을 소환하는 에피소드의 TV 드라마 내용이, 이제는 나의 시절이었음을 아주 어색하고 새삼스럽게 인식하곤 한다. 예전에는 ‘추억’ 그리고 ‘옛날 이야기’의 기준은 나에게도 옛날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추억’ 그리고 ‘옛날 이야기’의 기준이 나의 추억과 동일하게 되어버렸다니.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 다른 세대의 것과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철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그저 내 것을 아끼고 발전시켜가면 되는 것을, 자꾸 옆으로 눈을 돌려 비교한다. 그러다가 나의 것이 의도하지 않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기도 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한다.


비교의 대상은 말 그대로 비교의 대상일 뿐,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 대상을 따라서 달려가는 시간만큼, 그 비교의 대상도 변해간다. 결국 끊임없이 따라 하기만 반복할 뿐, 내 것을 완성하기는 어렵다. 비교하고 그것을 질투한다는 것은, 내 기준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내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엄마의 철없던 시절처럼 불필요한 마음의 짐만 얻게 될 수도 있다.


그저, 내 것이 소중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내 것에 흠이 갔다면 더 좋아 보이는 다른 것을 탐내기보다는, 내 것의 흠을 보완하고 발전하는 데 노력을 쏟았으면 한다. 


그렇게 나 자신 그대로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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