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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Oct 30. 2017

결국은, 내가 듣는 말

‘베아티투도(beatitudo)’라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행복’을 뜻하는 단어인데 ‘베오(beo)’라는 동사와 ‘아티 투도(attitudo)’라는 명사의 합성어입니다. 여기에서 ‘베오’는 ‘복되게 하다, 행복하게 하다’라는 의미이고 ‘아티투도’는 ‘태도나 자세,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즉 ‘베아티투도’라는 단어는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복을 가져올 수 있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행복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단어가 유독 마음에 남는 것은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의미 때문입니다.

- 한동일 [라틴어 수업]


“뭐 이 정도 가지고~”

“바람아~ 왜 그래~ 간지럽잖아~”

(바닷가의 일출을 보며) “해님이 바다에 살아?”


엄마, 아빠와 같은 간단한 단어를 하나씩 말하기 시작하면서, 너의 사랑스러움은 배가 되었다. 단순히 단어를 나열하는 수준에 머무르던 너의 어휘력은 어느새 문장을 만들었고, 엄마 아빠가 웃음을 그치기 어려울 만큼 재치 있는 표현도 곧잘 하곤 했다. 어떤 생각으로 이런 표현을 하게 되었는지 너의 생각을 유추해 가는 과정은, 마치 동화책을 읽는 것 마냥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아 즐거웠다. 네가 백지상태에서 무언가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반대로, 그 백지상태에 무엇을 어떻게 색칠해주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며 그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했지.


때로는, 엄마 아빠의 기분이 언짢거나 화가 났을 때의 말을 네가 그대로 따라 해서 당황하기도 했다. 그 나쁜 말의 의미를 모르고 쓰는 것이라면, 그 나쁜 말 자체를 너의 머릿속에서 잊히게 하기 위한 방법을 고심했다. 의미를 알고 썼다면, 그 말을 왜 쓰면 안 되는지를 설명하느라 고심했다.


네가 어떤 말을 하는가는 너의 생각과 상황을 그대로 반영해 주었다. 그래서 너의 말을 잘 들어야 했고, 그 말의 배경을 살펴야 했다. 한편으로는, 관찰자의 입장이 바로 부모의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네가 하는 말은, 결국 네가 듣는 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는 최대한 좋은 의미의 이름을 아이에게 지어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이름만큼이나 네가 반복해서 많이 듣는 말도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같은 이름이라 하더라도, 그 이름 한 자 한 자에 담긴 한자의 뜻은 다 다르기 마련이다. 네가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는지, 이름이라는 두 글자에 그 바람을 모두 함축시켜 넣으려는 노력에는 지나침이 없다. 그리고, 그 뜻이 담긴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부모의 애정과 희망이 담긴 이름이 너와 동일시되어 계속 불린다. 그렇게 너는 너의 이름을 듣는다. 네가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너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이면 너의 이름이 긍정적으로 언급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너의 의미가 퍼져나가기를 바란다. 너는 특별한 생각 없이 그 이름을 듣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에 의해 불려지는 이름은 그저 남들과 너를 구분하기 위한 지칭이 아니다. 너의 이름에 담긴 기대와 사랑을 네가 계속 느낄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의미가 담긴 말은 이름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쓰는 언어에는, 이미 삶의 지혜가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지혜라는 비밀을 후대의 사람들이 알아채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한동일 교수님의 책 ‘라틴어 수업’을 보면, 라틴어 단어에 담긴 어원에 대한 소개가 많이 등장한다. 그중 엄마가 가장 좋아한 단어는, 이 글의 첫머리에 언급한 행복이라는 뜻의 ‘베아티투도(beatitudo)’였다. ‘베오’와 ‘아티투도’의 합성어로,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복을 가져올 수 있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멋지게도, 인류의 선조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행복은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온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의미를 알지도 못하고 ‘나는 행복하지 않다’는 표현을 한다면, 내 마음 가짐이 이미 행복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인정하는 말이 되는 것은 아닐까.


‘베아티투도’라는 라틴어뿐만 아니라, 모든 언어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어야말로, 시간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수단이 아니겠니. 사회가 변함에 따라 신조어가 생기고 말을 가지고 노는 방법도 다양해지듯, 언어에는 분명 수세기 동안 인류가 알아낸 지식과 지혜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지금,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그 지혜를 놓치면서 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더 강하고 세게 보이기 위해 아니면 또 다른 이유로 목소리를 높이거나 거친 말을 입에 올리는 경우를 많이 본다. 내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하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을 공통된 문화로 받아들이고 따라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네가 조금이라도 나쁜 말을 하면 그 말을 고쳐주려고 노력하던 사람은, 네가 성인이 된 시절까지 같은 역할을 할 수 없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이제 너의 몫일 테니 말이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때, 잠시 너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주었으면 한다. 엄마 아빠가 왜 이름을 짓는데 많은 시간 심사숙고했는지, 왜 좋은 말을 해주려고 노력했는지, 네가 왜 좋은 말을 하기를 바랐는지, 네가 왜 좋은 말만 듣기를 원했는지 말이다.


네가 하는 말은 네가 듣는 말이었고, 네가 하는 말은 결국 너도 듣는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 주겠니.


너의 말이 너도 그리고 너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도 모두 밝아지게 하는 모습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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