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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Nov 09. 2017

꿈을 먹고 자라는 사람

요즘은 내 이름을 자주 불러본다. 나한테 말도 건다. “선미야, 힘내!” 하고 용기도 준다. 삐거덕거리는 몸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어본다. 나는 나 자신이며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도 하다. 나이 먹는 몸뚱이와 늙지 못하는 마음이 어느 때는 화합하고 어느 때는 도저히 화합할 수 없어 갈등하면서도 끝내 같이 가야 할 사이. 이런 나를 가장 마지막까지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 황선미 [가끔, 오늘이 참 놀라워서]


아이돌이 되기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다.


엄마의 학창 시절에도 아이돌의 인기는 대단했다. 반 마다 ‘우리 오빠들’을 응원하는 팬들이 꼭 있었다. 저마다 얘기하는 자기들만의 ‘오빠’ 이야기는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해도 재미있었다. 자신 있게 누군가의 팬을 자처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굉장히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기에,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듯했고 가끔은 부럽기도 했다.


아이돌에 대한 지금의 열기는 그때와 비교했을 때 더하면 더했지, 전혀 못하지 않다. 그리고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저 동경의 대상이었던 아이돌이라는 위치가, 지금은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목표의 대상으로 바뀐 것 같아 그 적극적인 태도 변화에 놀라곤 한다. 


엄마가 교복을 입던 시절에는 ‘우와~’라는 감탄사가 따라오는 직업이 따로 있었고, 그러한 직업의 대부분은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나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실, 그 직업들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지만 공부를 잘해야만 할 수 있는 직업이니까, 어른들이 기특하다며 칭찬하니까 등의 외부적인 요인들로 가졌던 꿈이었던 것 같다. 그에 반해, 지금은 미래의 꿈을 묻는 질문에 다양한 직종의 직업이 언급된다고 한다. 마냥 조바심과 걱정의 시선으로 너의 세대를 지켜보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매우 감사한 일이고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정말이지, 이렇게나 많은 젊음들이 아이돌을 꿈꾸고 있을 줄은 몰랐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의 노력과 고민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시청자의 입장에서, 이제는 아이돌의 현란한 무대를 보면 멋지다는 느낌보다는 힘들겠다 라는 느낌이 먼저 들기도 한다. 어쨌거나 엄마는 우아함 뒤에서 아등바등하는 그 고단함에 더 마음이 쓰이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지만, 이것 또한 나의 세대와 지금의 세대는 다른 것 같더구나. 


성장 과정 그 자체를 드러내 보이는데 거부감이 없다. 땀 흘리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 동거 동락했던 동료가 먼저 선택되었을 때 안아주는 모습. 아니, 어쩌면 안아줘야만 하는 그 상황. 부끄럽다고 말하는 모습.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당하다고 말하는 모습 모두 보여주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참, 부럽고 대단하다. 


점점 원하는 것을 이루기 어려운 시기라고들 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람이 아닌 기계과 일자리를 다투는 시대이니, 노력으로 넘어설 수 없는 것들도 분명 있을 테니 말이다. 말 그대로 무한경쟁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못하는 모습부터 변하는 모습까지 나의 성장과정을 드러내 보이는데 당당하고, 수많은 시청자들의 공감과 응원을 받아내고, 다양한 관심들 속에서 결국에는 빛을 보게되는 그 모든 단계를 이겨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의 가능성을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믿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럽고 대단하다.


분명 잘 할 것이라는 믿음. 이 기회에 충실해야 한다는 각오.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내고 싶은 다짐. 바로 나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꿈.


스스로의 꿈을 먹고 자란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상황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동경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꿈꾸게 되는 시기가 왔을 때, 그때는 어떤 직업이 너의 동경의 대상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아이돌이 대세려나. 하지만, 네가 어떤 꿈을 꾸던 나도 할 수 있다는 그 믿음, 각오, 다짐, 꿈의 에너지를 마음껏 풍기며 지냈으면 한다. 수치로 집계될 수는 없을지라도, 그 에너지에 홀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너의 이름을 누르고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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