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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Jan 09. 2018

소설과도 같은 시간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

확실히
비관은 기분에 속하고
낙관은 의지다.
인생을 낙관적으로 살 것인가, 비관적으로 살 것인가.
그것은 자신의 의지에 달렸으며,
그런 삶의 방식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마스다 무네아키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가끔, 사교육으로 유명한 동네의 학원가를 지나친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부지런히 이동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이렇게 햇살 좋은 날씨에, 낙엽이 떨어지는 싱숭생숭한 계절에, 혹은 하얗게 눈이 쌓인 낭만적인 시기에 힘겹게 거리를 걸어가는 아이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일까.


'엄마가 학창 시절이었던 그때와 지금의 아이들은 다른 점이 없구나'라는 생각은, '아직 어리기만 한 너도 이때가 되면 똑같이 버거움의 시기를 맞이하겠구나'하는 생각으로 뻗어간다. 안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의 학창 시절이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 외에는 다른 꿈을 생각해볼 여력이 없었던 때인 만큼,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상상의 스토리는 주로 대학을 진학하여 어떻게 대학 생활을 보낼 것인가에 대한 상상이었던 것 같다. 이미 대학 생활은 물론이요 한참은 더 달려온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의 입장에서 그 당시의 부질없는 상상에 비웃음을 날릴 법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 상상의 시간에 응원을 보낸다. 상상이야말로 그 시기를 이기는 힘이었으니 말이다.


엄마에게 상상의 시간은 주로 피아노 연습이라는 숙제의 시간에 이루어졌다. 피아노 연습이 기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악보에서 시키는 그대로 손가락을 움직일 수만 한다면, 머릿속에서는 그야말로 딴생각을 하기에 매우 적합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손가락이 익숙해진 곡에 맞춰 이런저런 생각을 시작하면, 연습시간이 짧은 것 같다는 기특한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즐거운 곡을 연주할 때면 기분 좋은 상상은 더 큰 해피 엔딩으로 이어졌다. 우울할 때면, 침착한 곡을 연주하며 그 긴 연주 시간 동안 내 마음을 정리하곤 했다. 이쯤 되면, 피아노 연습의 시간은 피아노 실력을 높이기 위한 시간이 아닌, 소설 한 편과도 같은 시간이 되어 버린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하루 중, 잠시나마 내 감정을 더 깊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었다. 


엄마의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긍정적 해피 엔딩을 그려 넣은 나만의 소설이었던 만큼, 너에게도 너의 상황에 걸맞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상상의 장면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마침, 엄마가 읽고 있는 책에서도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중요함을 매우 강조하더구나. 그리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기도 했다. 상황이 낙관적이 것이 아니라 내가 낙관적인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알 수도 있었음에도 그냥 지나쳤던 사실 때문에 말이다.


‘비관은 기분에 속하고 낙관은 의지다’라는 문구처럼 낙관이 정말 의지라면, 낙관적인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해피 엔딩의 상상을 계속 생각하며 힘든 시간을 이겨 낸다면, 그 상상은 결국 현실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엄마가 어린 시절 피아노를 치면서 펼쳐나갔던 상상의 시간.

이제 엄마는 피아노가 아닌 다른 시간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고자 한다. 

너는 무엇을 하며 그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상상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꼭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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