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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Jan 22. 2018

달성할 생각이 없는 목표

가짜 목표와 진짜 목표

만성 시작 환자가 꾸준한 성취자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결국 불완전함에 대한 내성을 기르는 것이 핵심이다. 더 이상 완벽하지 않게 되는 순간 그만두고 마는 바보 같은 짓이야말로 그만둬야 하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것은 쓸모없지 않나? 흐름을 잃었으니 실수의 진흙탕에서 뒹구는 편이 낫다.’ ‘어젯밤에 정신을 놓고 먹어댄 마당에 오늘 더 먹는 것이 대수랴.’ 완전히 무너지기도 전에 스스로 재빨리 포기하고 마는 그런 판단을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이 했는가.

존 에이커프 [피니시]


학창 시절의 일이다. 여느 대학생들이 그랬듯 엄마도 900점 이상의 고득점을 목표로, 여러 토익 학원을 전전하며 토익 스터디 모임에도 참여하는 등 영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곤 했다. 멤버가 많지 않았던 스터디 모임은 함께 시간을 맞춰가며 문제를 푸는 형태로 진행이 되었는데, 채점하는 시간이 가장 스트레스였다. 멤버들은 모두 900점은 ‘당연히’ 넘는 상태였기에 틀리는 개수가 한 손에 꼽는 상태였고, 그래서 정답을 체크할 때도 틀렸다는 표시를 하는 문제가 거의 없었다. 


그에 반해, 잘하는 것처럼 보여서 합류하게 되었던 엄마는 채점 시간이 되면 고개를 숙이고 멤버들의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틀렸음에도 맞은 것 마냥 가만히 있던 문제들이 정말 많았다. 지금의 마인드라면 그저 나의 수준을 인정하고 '많이 틀렸네~' 라며 툭툭 털어버렸을 테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었기에, 그렇게 속으로만 내 점수를 되뇌며 창피한 마음을 삭이곤 했다.


문제는, 그렇다고 평소에 도서관에 진득이 앉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고득점을 목표로 자발적으로 들어갔던 스터디 모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멤버들과의 실력 차를 반복적으로 확인하게 되자 어차피 안 되겠다는 체념 상태로 돌입했다. 매일같이 시간 맞춰 문제를 푸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졌고, 현격히 낮아진 암기력 탓에 고3까지 외웠던 단어 이후로 새로운 단어도 쉽사리 늘어나지 않았다. 도서관에 좋은 자리를 잡고 책을 펴고 앉았지만, 이 책 저 책 펴다 보면 지루해진 마음에 나가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곧 실행에 옮겼다.


목표에는 진짜 목표와 가짜 목표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종적으로 내가 원하는 결과를 설정하는 것이 목표인데, 가짜 목표가 있다는 것에 의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엄마가 생각하기에는, 안 될 것이라고 체념하고 있음에도 설정하는 목표들이 있다. 남들 다 하니까 따라서 잡은 목표였다. 그리고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중간 결과에 매번 실망감이 들었다. 연습문제를 풀 때도 계속 완벽하지 못한 점수가 이어지면서 금세 무기력해지고 마음속으로는 이미 포기했지만, 나는 여전히 노력 중이라는 코스프레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반복되는 실망감에 목표가 이루어질 리 없다고 여기면서도 정하는 목표라면, 가짜 목표다. 달성할 생각조차 없는 목표다. 


과정에서조차 완벽하게 완성해야지만 목표를 성취한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 목표를 달성할 자신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달려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아닐까.


아직은 어리기만 할 뿐인 너의 영어 교육을 고민하다, 엄마의 학창 시절 발목을 잡던 영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생각이 나서 이렇게 끄적여 본다. 목표 설정의 기준은 영어가 아니더라도 모든 것에 해당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공의 흐름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굴곡이 있는 과정 속에서 재빨리 포기하는 실수만 범하지 않는다면, 너의 목표는 가짜 목표가 아닌 진짜 목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려갈 수 있는 목표와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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