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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Feb 05. 2018

그 당시의 느낌과 그 당시의 모습

잊혀지는 기억과 기록하는 기억

모두가 춤추는 공연에서 커다란 DSLR을 들고 우직하게 무대를 찍고 있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백이면 백 한국 사람이다. 그는 해상도 높은 사진들을 증거물로 제시하며 공연이 참 신나고 좋았다고 말하겠지. 미쳐서 춤추라고 하는 공연 속에 그는 발 한 번 까딱이지 않았음에도. 그건 진실일까? 나라면, 어떤 풍광에, 어떤 음악에, 어떤 감정에 푸욱 뛰어들었다 나와, 아무런 그럴듯한 증거물도 없이 그냥 맥주 한 잔 놓고 침을 튀기며 말하겠다. 그 느낌이 어땠는지, 그 경험이 나를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김하나 [힘 빼기의 기술]


너의 모습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그림 그리는 모습, 재미있어 웃는 모습, 이것저것 관찰하는 모습, 심지어 잠들어있는 모습까지 모두 핸드폰 갤러리 속에 담아 둔다. 엄마의 핸드폰은 꽤나 자주 저장 공간이 부족하다는 알람이 뜨는데, 역시나 가장 큰 원인은 빠른 속도로 쌓여가는 사진들 탓이다. 사진을 정리하고 따로 저장해두기 위해 과거의 사진들을 보고 또 보지만, 아무리 보아도 지울만한 것이 없다. 그 사진을 찍을 때의 에피소드가 여전히 너무나 생생하다. 사진을 지우면, 사진 속 장면이 일어났던 사실마저 지워질까 무섭다.


그런데 하루는 걱정이 되더라. 엄마는 너의 지금 이 순간을 기억에 남기기 위해 핸드폰을 너에게 들이 대지만, 너는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말이다. 네가 이렇게 흥이 겨워서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웃는데, 그 즐거움을 함께 느끼고 싶어 쳐다보는 엄마는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말이다. 엄마는 너무나도 당연히 너를 보며 큰 웃음을 짓고 있는 중인데, 혹여나 너를 촬영하는 핸드폰에 가려진 엄마의 얼굴 일부분만 보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 말이다.


나의 기억도 마찬가지로 걱정이었다. 지금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들게 된 핸드폰 화면 속 너의 모습이, 진짜 엄마가 간직하고 싶어 했던 모습인가 말이다. 이 화면이 더 커지게 된다면 너의 행동과 연결되는 주변의 상황까지 모두 다 함께 담을 수 있을까. 역광을 처리하느라 고심하는 시간 동안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지금의 모습을 정말 담고 있기는 한 걸까.


그 당시의 ‘느낌’과 그 당시의 ‘모습’

이 둘 중 오래 남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진을 찍는 일이 아니어도 엄마가 자주 핸드폰을 드는 이유는 지금 느끼는 감정이나 누군가와의 대화 중 계속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글로 남겨두기 위해서다. 그만큼 남기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 특히나,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이 순간이 언젠가 잊혀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그 당시의 느낌이라는 기억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바뀌는 내 상황에 맞춰 역시나 바뀌기 마련이지 않은가. 같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서로가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가 있듯이 말이다. 


기억은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내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더구나. 이왕 함께 간직하고 있는 기억은, 서로가 그 기억이 일치하면 좋겠다. 당연한 거겠지.


하지만, 가끔은 의식적으로 카메라를 내려놓고자 한다.


기록하는 기억이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지만, 카메라 앵글을 거치지 않은 더 넓은 모습이 보고 싶어서다. 잊지 않기 위해 남기는 그 당시의 느낌을 기록한 그 당시의 모습이 진짜를 담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면, 무엇을 위해 매번 진짜의 모습을 내 눈으로 보지 못하는 수고를 감내하는 것일까. 엄마가 너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며 촬영한 영상의 순간이, 너에게는 핸드폰에 가려진 엄마의 표정이 궁금하기만 한 순간이라면 말이다. 엄마의 반응이 궁금해서 더 웃고, 더 크게 노래를 부른 것이라면 말이다.


이 느낌에 대한 기억이 점차 변해간다 하더라도, 가끔은 기억이 바뀔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이는 대신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기록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지금 이 순간에 폭 빠지는 찰나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말이다.


카메라 앵글을 보며 웃는 대신, 너의 눈을 직접 보며 웃는 횟수를 더 늘려보고자 한다.


너도 가슴 벅찬 느낌을 받는 순간을 만나게 되거든, 나중을 생각하기보다는 일단 그 시간에 그대로 뛰어들어 보기를 바란다. 남겨진 기록으로 재소환하는 기억보다 더 큰 감정이 너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궁금하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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