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불어온 따스한 미풍은 봄을 알리고 메마른 낙엽을 쓸어 가는 바람은 가을을 예언하지만, 마감에 쫓겨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할 때는, 무거운 장바구니를 낑낑대며 차 트렁크에서 부엌으로 나를 때는 그런 순간들을 감지하지 못한다. 여유가 있어야, 온전히 집중해야, 주변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어야 자연의 변화가 보인다.
- 토르비에른 에켈룬 [숲에서 1년]
가끔은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틀에 갇혀 있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느꼈단다. 왜냐면 남들이 다 그렇게 사니깐. 이유가 좀 당황스럽지. 같은 상황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지루할 법도 하겠지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니 안심이 되었거든. 감히 그 틀을 벗어날 생각도 하지 못했단다. 변화를 준다고 해도, 그 틀 안에서만 움직이려 했지. 그것만으로도 큰 용기였거든. 틀 밖은 어떨까 라는 생각조차 모험이었다. 그리고 그 모험을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했어.
너를 만나기 한 달을 앞두고, 집에 앉아있던 첫날이었단다. 10여 년 동안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부대끼며 바삐 출근하는 사람들을 당연하게 봐왔었지. 그리고 그렇게 정신없이 출퇴근하는 일상이 정상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여겼었다. 그래서 출근해야 할 시간에 거실에 앉아 있다는 것이 너무 어색했다. 집 안은 고요했지만 마음은 쿵쾅쿵쾅 시끄러웠지. 남들 다 바쁜데 나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만 생산적이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죄책감이 들어서. 오전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점심도 대충 때우고 소파에 몸을 기댔는데,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졌지. 햇살이 거실 책장을 조금씩 침범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책장 전부를 점령한 것이었다. 책들뿐 아니라 우리 집 전체가 반짝반짝 빛났다. 우리 집의 모든 물건들은 이 호사를 매일 누리고 있었겠지만, 엄마는 우리 집이 이렇게 멋진 곳이었다는 것을 그 날 처음 알았다. 그 시간에 그곳에 있다는 것이 감사했지.
새삼 느꼈다. 가끔은 틀을 벗어나도 괜찮다고.
남들 다 바쁘니까, 남들이 다 하니까, 남들 역시 여유가 없으니까 나도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거기서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끼기도 한다.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잖니. 그런데 ‘항상’이 아닌 ‘가끔’은 그 틀에서 벗어나도 좋다. ‘다른 사람들 모두 그래’라는 틀이 전부 옳지 만은 않으니까. 그리고 틀에서 벗어나면 여유라는 선물을 얻을 수 있고, 여유가 있어야 평소 보지 못했던 주변의 고마움을 알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틀을 벗어나야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휴가지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매일 반복되었던 일상이라는 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잖니. 그런데 현실적으로 휴가를 자주 떠나기는 어렵다. 휴가를 갈 수 있는 날짜도 제한적이다. 게다가 요즘 같은 복잡한 사회에서는, 1초라도 세상에 눈과 귀를 닫고 있다면 큰일 날 것 같은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뒤쳐질 것만 같거든.
그런데, 우리에게 필요한 여유는 아무런 책임을 갖지 않아도 되는 자유인의 여유가 아니다. 아무런 책임을 갖지 않게 된다면 자유롭다기 보다는 오히려 불안해질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여유는 틀에서 완전하게 벗어나는 것이 아닌, '틀에서 잠시 외출하는 여유'일 것 같다. 혹시 잠깐 외출해도 되는 틀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을까. 꼭 해야만 하는 틀과 안 해도 되는데 붙잡고 있는 틀 중 어느 쪽의 비중이 높은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데, 혹은 지금 당장 할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것들 때문에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주변에 아무리 좋은 것이 많다고 해도, 내가 쳐다보지 않으면 알아챌 수가 없단다. 그리고 쳐다볼 수 있는 여유가 많을수록 감사함을 더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말이지. 가끔은 꼭 틀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자.
그리고 그 여유는 의무감을 내려놓는 여유가 아니라, 너를 불필요하게 옭매는 것을 내려놓는 여유 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