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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Nov 26. 2018

가끔은, 틀에서 벗어나도 괜찮다

아침에 불어온 따스한 미풍은 봄을 알리고 메마른 낙엽을 쓸어 가는 바람은 가을을 예언하지만, 마감에 쫓겨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할 때는, 무거운 장바구니를 낑낑대며 차 트렁크에서 부엌으로 나를 때는 그런 순간들을 감지하지 못한다. 여유가 있어야, 온전히 집중해야, 주변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어야 자연의 변화가 보인다.

- 토르비에른 에켈룬 [숲에서 1년]


가끔은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틀에 갇혀 있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느꼈단다. 왜냐면 남들이 다 그렇게 사니깐. 이유가 좀 당황스럽지. 같은 상황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지루할 법도 하겠지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니 안심이 되었거든. 감히 그 틀을 벗어날 생각도 하지 못했단다. 변화를 준다고 해도, 그 틀 안에서만 움직이려 했지. 그것만으로도 큰 용기였거든. 틀 밖은 어떨까 라는 생각조차 모험이었다. 그리고 그 모험을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했어.


너를 만나기 한 달을 앞두고, 집에 앉아있던 첫날이었단다. 10여 년 동안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부대끼며 바삐 출근하는 사람들을 당연하게 봐왔었지. 그리고 그렇게 정신없이 출퇴근하는 일상이 정상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여겼었다. 그래서 출근해야 할 시간에 거실에 앉아 있다는 것이 너무 어색했다. 집 안은 고요했지만 마음은 쿵쾅쿵쾅 시끄러웠지. 남들 다 바쁜데 나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만 생산적이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죄책감이 들어서. 오전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점심도 대충 때우고 소파에 몸을 기댔는데,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졌지. 햇살이 거실 책장을 조금씩 침범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책장 전부를 점령한 것이었다. 책들뿐 아니라 우리 집 전체가 반짝반짝 빛났다. 우리 집의 모든 물건들은 이 호사를 매일 누리고 있었겠지만, 엄마는 우리 집이 이렇게 멋진 곳이었다는 것을 그 날 처음 알았다. 그 시간에 그곳에 있다는 것이 감사했지.


새삼 느꼈다. 가끔은 틀을 벗어나도 괜찮다고. 


남들 다 바쁘니까, 남들이 다 하니까, 남들 역시 여유가 없으니까 나도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거기서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끼기도 한다.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잖니. 그런데 ‘항상’이 아닌 ‘가끔’은 그 틀에서 벗어나도 좋다. ‘다른 사람들 모두 그래’라는 틀이 전부 옳지 만은 않으니까. 그리고 틀에서 벗어나면 여유라는 선물을 얻을 수 있고, 여유가 있어야 평소 보지 못했던 주변의 고마움을 알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틀을 벗어나야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휴가지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매일 반복되었던 일상이라는 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잖니. 그런데 현실적으로 휴가를 자주 떠나기는 어렵다. 휴가를 갈 수 있는 날짜도 제한적이다. 게다가 요즘 같은 복잡한 사회에서는, 1초라도 세상에 눈과 귀를 닫고 있다면 큰일 날 것 같은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뒤쳐질 것만 같거든.


그런데, 우리에게 필요한 여유는 아무런 책임을 갖지 않아도 되는 자유인의 여유가 아니다. 아무런 책임을 갖지 않게 된다면 자유롭다기 보다는 오히려 불안해질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여유는 틀에서 완전하게 벗어나는 것이 아닌, '틀에서 잠시 외출하는 여유'일 것 같다. 혹시 잠깐 외출해도 되는 틀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을까. 꼭 해야만 하는 틀과 안 해도 되는데 붙잡고 있는 틀 중 어느 쪽의 비중이 높은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데, 혹은 지금 당장 할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것들 때문에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주변에 아무리 좋은 것이 많다고 해도, 내가 쳐다보지 않으면 알아챌 수가 없단다. 그리고 쳐다볼 수 있는 여유가 많을수록 감사함을 더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말이지. 가끔은 꼭 틀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자.

그리고 그 여유는 의무감을 내려놓는 여유가 아니라, 너를 불필요하게 옭매는 것을 내려놓는 여유 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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