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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Dec 14. 2018

저렇게 보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발레에서 아름다움의 핵심은 어떤 동작이든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처럼 해내는 것이다. 그건 우아함의 본질이기도 하다. 격렬한 감정이나 견디기 힘든 고통을 꼭꼭 씹어서 소화한 뒤 한 단계 승화하는 것이다. 무대 위의 발레리나는 어떤 순간에도 배역이 아닌 무용수 자신의 불안이나 통증을 날것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 최민영 [아무튼, 발레]


꼭 그런 아이가 있다. 얼굴이 예쁘다. 차라리 공부라도 못했으면 좋겠는데,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는지 공부도 잘한다. 반에서 상위권이 아니라 전교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예민하거나 모난 성격이었으면 좋겠는데, 뭐 이런 경우가 또 다 있는지 성격도 털털하다. 주변 친구들한테 인기까지 많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다는 그 감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질투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그 아이를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고 마니까. 그 친구는 나를 괴롭힌 적도 없고, 나를 못살게 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보다 잘한다는 것이 부러움을 넘어 질투의 대상이 되었고, 괜히 그 친구가 싫어지기까지 했다.


네가 자라면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질투를 느끼게 될까. 나의 장점이라며 자부심을 갖고 있던 재능도, 어느 순간 더 뛰어나게 잘하는 누군가를 만나 상처를 받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겠지. 애당초 불공평한 시작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엄마도 그랬으니깐.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성과물 탓에 너 스스로에게 짜증을 내거나, 네가 질투를 느끼거나, 네가 어떤 분야에서 부족함을 느껴 속상한 마음에 허우적거릴 때도, 엄마는 너에게 그러지 말라고 화를 낼 수 없다. 엄마도 똑같이 그랬으니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너를 다그치거나 너에게 화를 낸다면, 그것은 엄마 자신을 혼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질투가 나쁘기만 한 감정도 아닌 것 같다. 질투는 결국 누군가가 나보다 뛰어나가는 것을 시인한다는 것이니깐.


질투의 감정을 느꼈다면, 중요한 것은 그 이후에 어떤 액션을 취할 것인가이다. 누군가를 질투해서 싫어하는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네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가 결정될 테니 말이다. 


발레에서 아름다움의 핵심은, 어떤 동작이든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처럼 해내는 것이라고 한다. 발레뿐이랴. 엄마는 이제 이런 생각이 든다. 늘 멋있어 보이는 사람, 항상 일이 잘 풀리기만 하는 것 같은 사람,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사람 즉 질투가 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모두 저렇게 보이기 위해 뒤에서 얼마나 노력하고 연습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잘할 수 있다며 자랑하는 친구도 분명 있다. 어린 시절에는 이러한 케이스가 부러움의 극치였다. 그런데 노력 없이 멋진 아웃풋을 얻었다며 자랑하는 사람은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사람이다. 그 결과물은 반드시 뺏기고 말 것이다. ‘제대로’ 노력하는 사람에게.


연기 활동을 하다 미국으로 넘어가 치과 의사인 남편과 살고 있는 한 연예인이 있다. 그 부부의 이야기가 나왔던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지. 남편과 그녀의 딸이 남편의 모교를 거니는 중이었다. 딸이 아빠의 똑똑함을 자랑스러워하자, 아빠의 대답은 이랬다. “똑똑한 것이 아니라 노력 많이 하면 모든 걸 할 수 있어.”라고. 유학 시절 돈을 아끼기 위해 핫도그와 햄버거를 워낙 많이 먹어서, 지금은 지겨워서 잘 먹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대게 그 사람이 지금 누리고 있는 화려한 결과만 보려고 한다. 결과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부러워한다. 핫도그와 햄버거만 먹던 시절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물론 그런 과정을 건너뛴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불신을 갖고 쳐다보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화려한 결과를 즐기기에 합당한 노력의 시간을 보낸 사람들 역시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질투하고 미워하기 전에, 그 친구가 그렇게 보이기까지 얼마나 뒤에서 눈물을 흘렸는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나랑 똑같이 놀았는데 그 친구가 나보다 늘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면, 분명 나보다 뭔가를 더 했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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