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 Ji Youn Mar 11. 2019

오늘이라는 정거장

옆에서 단 한 명이라도 '지금은 억울해하기보다는 너를 들여다봐야 할 때'라며 담담하게 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정말로 타인의 탓이라면 지금은 일단 힘을 키울 일이고, 누구의 탓도 아니라면 이제 그 꼬인 생각들은 들여다보아야 하며, 나의 탓이라면 그때부터 내 성장의 발판을 다시 조정해야 합니다. 당신의 과거는 당신의 미래가 아닙니다.

-허지원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이제 막 봄의 문턱을 넘어섰는데 너는 벌써부터 산타 할아버지 타령이다. “산타 할아버지가 어떤 선물을 주실까?”라며, 갖고 싶은 장난감들을 줄줄이 읊는다. 그 리스트가 겨울까지 유효할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너를 보며, 선물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무엇을 갖고 싶은지 미리 정해놓고 그것을 받을 때의 기분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놀라운 감정을 겪는 서프라이즈는 아니겠지.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뜯으며 무엇이 들어있을까 상상하는, 적당한 두근거림도 ‘너의 선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네가 이야기하는 선물의 의미는 대개 집에는 없는 ‘새로운 것’이다. 갖고 싶은 것이 널린 이 세상에서 ‘이거 사줘!’라며 떼를 쓰기보다는 ‘선물 주세요’라며 조금은 말을 포장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너는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획득한다. 너에게는 누군가로부터 새로운 물건을 받는 것이 선물이지. 


하지만, 남으로부터 선물을 얻어내려면 불필요한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해야 할 수도 있지. 그래서 이제 어른이 될 너에게, 번거로운 과정을 건너뛰면서 매일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너는 이미 매일 선물을 받고 있다. 지금이 바로 선물이니까. 네가 알고 있는 선물, “Present”가 바로 현재이지 않니.


장난하냐며 소리를 지를 너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그리고 엄마도 그랬다. 지금은 바로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이 가장 갖고 싶어 했던 시간이며, 현재야 말로 선물(Present)이니 지금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른이 되기 전에도 이미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것은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였다. 


“공부해라”


지금이 선물처럼 주어진 엄청나게 중요한 시간이니, 바로 지금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라는 의미로 듣게 되는 Present였지. 이런 Present는 지금도 받고 싶지 않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느끼는 ‘현재가 선물’이라는 의미는 좀 다르다. 짜증 나지도 않고, 진지하다. 왜냐하면 그때는 주변 사람들이 제시했던 미래가 오직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는 것”이었다면, 어른이 되어서 느끼는 미래는 좀 무섭기도, 두렵기도, 막막하기도 하거든. 대학이라는 미래는 “안 가도 돼”라며 소리 지를 수 있는 배짱이 허용되는 미래지만, 어른이 되어 느끼는 도대체 알 수 없는 미래는 그 막연함에 몸을 경직되게 만들기도 하거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미세먼지만큼이나 뿌연 이 질문과 관련해서, 너무나도 안심이 되는 말이 있었다. “당신의 과거는 당신의 미래가 아닙니다.”라는 말. 내가 어제 했던 행동이 앞으로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했는지, 얼마나 오래도록 걱정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나를 움츠러들게 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침대에 누워 이불 킥을 해보지만 멀리 날아가는 것은 이불에 있던 먼지뿐, 창피함은 이불과 함께 다시 고스란히 나에게 덮어진다. 그런데, 당신의 과거는 당신의 미래가 아니라는 말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니.


과거가 미래가 아닌 이유가 바로 Present다. 과거는 오늘이라는 정거장을 꼭 거쳐가야지만 미래로 갈 수 있다. 지금 이 정거장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직진해 갈 것인지, 환승하기 위해 내려올 것인지, 그렇다면 어느 역으로 갈 것인지 다 오늘이라는 정거장에서 결정이 난다. 정말 감사하다. 어제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말이다.


이쯤 되면, 너도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가 진짜 선물이라는 것을, 매일 받을 수 있는 선물이라는 것을 말이야.


오늘이라는 정거장을 늘 잘 정비해두기를 바란다. 어제의 기차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좋은 꿈을 꾸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정거장이 잠시 지저분해졌다면, 가능한 한 빨리 청소해두면 좋겠다. 그래야 지나가는 기차 안에서 혹은 환승하기 위해 내리면서 느끼는 기분이 상쾌해질 테니까. 자주 빗자루를 드는 것이 번거로울 수도 있겠지만, 빨리 훌훌 털어버리면 네 마음도 가벼워질 것이다. 이제, 미래로 가는 기차는 다시 잘 출발할 수 있을 것 같니?


어제까지 이 사실을 몰랐어도 괜찮다. 어제는 내일이 아니니까. 어서, 오늘이라는 정거장에서 현재라는 선물을 잡아라. 마음에 들지 않은 어제였다면, 오늘 이 정거장에서 방향을 다시 잡아야지. 




사진 출처: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저렇게 보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