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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Apr 25. 2019

알면서 못하는 말, “미안해”

특히,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과가 불가능한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사과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만드는 유일한 대화법이다.

- 셀레스트 헤들리 [말센스]


유치원 친구들과 만나 주말을 보내던, 날씨는 추웠지만 엄마들과 마음을 나누는 시간에 마음은 포근한 그런 날이었다.


매일매일 같이 놀면서도 뭐가 그렇게 할 이야기가 많고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이리저리 방을 옮겨가며 종종 소리도 지르고 재미있게 놀던 너희들의 소리가 즐거웠다. 그런데 이야기를 중간중간 엿듣다 보니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안해”라는 말을, 너희들은 아주 쉽게 쓴다는 것이었다.


“네가 지나가다가 내 팔을 건드려서 내가 아팠어.”

“미안해.”

“괜찮아.”


서로 이야기하는 불만 사항들은, 엄마 입장에서는 정말 “쪼잔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수준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불편했던 사항들을 이야기하는데 매우 당당했다. (특히, 너는 네가 기분 나빴던 사항을 너무 자세하고 상세하게 이야기를 해서, 듣는 엄마가 다 지칠 정도였다.) 그리고 “사과해”라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상대방은 “미안해”라는 말을 참 잘했다. “괜찮아”라는 말도 참 잘했다. 저렇게 “괜찮아”라는 말을 쉽게 할 것이면, 불만을 왜 이야기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유치원에서 배운 것인지, 아니면 아직 어린 너희들은 이런 것이 원래부터 당연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반복되는 그 대화가 참 예쁘고 부러웠다. “미안해”라는 말을 성의 없이 내뱉는 경우도 분명히 있었으나, “미안해”라는 말을 기꺼이 한다는 것에서 어른인 엄마는 너희들이 참 대견했단다.


어른이 되면 많이 달라진다. “미안해”라는 말을 할 경우, 상대방에게 무엇인가 약점을 잡힌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미안해”라는 말은 마치 자존심을 내려놓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인지, 아무리 상대방이 아무리 잘못된 점을 이야기해도 이 말만큼은 절대로 내뱉을 수 없는, 하기 싫은 말이 되어 버린다. 


“미안해”라는 말을 하지 못해 일을 키우는 경우도 상당히 많단다. 특히 가까운 사이에서 더 그런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잘잘못을 따지는 것인지, 혹은 그냥 넘어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우리만큼은 사과를 하고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사실,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 만큼 “미안해”라는 말이 필요한 관계도 없을 것 같다. 가깝다면, 특히나 하루 종일 얼굴을 보고 살고 있는 사이라면, 상대방의 감정에 무뎌지게 되기도 하거든. 아침에는 서로 안 볼 것처럼 화를 내면서 헤어졌지만, 어차피 저녁에 다시 만나서 밥도 같이 먹고 일상을 이어가게 되면서 그렇게 또 대화를 이어가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거든. 다시 이야기도 하고 챙겨주니깐 상대방의 마음이 괜찮아졌구나 싶어서 잊고 넘어가기 쉽겠지만, 그렇지 않단다.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관계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잘도 말하면서, 왜 더 소중한 인연에게는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일지 몰라도 안으로도 계속 조금씩 금이 커질 텐데 말이야. 그래서 요즘에는, 엄마도 아빠에게 "미안해"라는 말을 자주 하려고 노력 중이란다.


슬프게도, 만약에 말이지. 언젠가 너와 나도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갈 수 없을 만큼 의견 차이가 심해지는 그런 순간이 올 수도 있겠지. 그리고 지금 엄마가 아무리 발버둥 치고 있다고 해도, 엄마가 되기 싫어했던 그런 성격의 할머니가 되어 있을 수도 있겠고. 그럼, 부탁인데, 그때 엄마한테 “미안해”라는 말을 먼저 해줄 수 있겠니? 딱딱해진 마음과 굳은 머리 탓에 “미안해”라는 말은 절대 못 하겠다고 버틴다 해도, “미안해”라는 말에는 나이나 성격이나 상황을 막론하고 누구나 “괜찮아”라고 말할 준비는 언제든 되어 있을 것 같거든. 


“사과가 불가능한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사과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만드는 유일한 대화법이다.”라고 하니깐. 우리는 끝까지 대화할 수 있는 사이였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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