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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대한 재능 발견, 예원학교 입학시험 낙방

국민학교 시절 (진짜 82년생 김지영의 특별한 이야기)

by 김지영 Jiyoung Kim

국민학교 내내 성적은 중상위권으로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여 우울함이 마음에 내제하고, 항상 주눅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고학년으로 갈수록 미술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조금씩 자존감이 생겼다. 학교에서 미술관련 상들을 받으며 학년에서 가장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수영과 자전거타기, 피아노치기 등 예체능에서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토요일 오전에도 학교수업이 있었고, 아빠는 토요일도 출근을 하였다. 항상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엄마가 돈까스를 튀겨주었고, 동생과 맛있게 먹으며 긴급출동 911 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토요일 오후는 유일하게 여유로운 자유시간을 보낼수 있었고,

일요일은 하루종일 교회활동을 해야 했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깊은 기독교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고, 아빠도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결혼승낙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족은 당연하게 일요일은 교회를 갔다.

일요일 아침예배로 시작하여 오후예배까지 드리고, 부모님은 교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일요일은 온전히 교회에서 보내게 되었다.

당시 우리가 다니던 교회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있던 감리교회로 대부분의 교인들이 젊은 가족들이었고, 많은 교인들이 교회활동에 열정적이고, 방언기도가 수시로 들리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였다.


당시에 나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부모님이 이끄시니 예배 뿐만 아니라 여러 교회행사에 참여하였다.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으니 많은 설교말씀들이 대부분 지루하게 느껴졌고, 그래도 성경책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에 빠져보려고, 일부러 읽어 볼 노력도 해보았지만,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몇 구절 읽고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 당시 성경책은 어려운 한자단어로 쓰여있어서 더욱 그러하였던 점도 있겠지만, 예를들면, 천로역정이라는 비교적 쉽게 쓰여진 기독교 소설도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고, 성령의 감동이 없는데 교회 행사에 매번 참여하는 것은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고, 매주 일요일을 온전히 교회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일요일날 가족끼리 나들이를 가거나 다른 외부 소풍에 참여할수도 없었다. 하지만, 일요일 저녁에는 서울 시내의 좋은 식당들에 가서 외식을 하곤 했었다. 당시 아빠가 모는 자가용을 타고, 식구들이 좋은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러 가던 경험은 부모님이 주신 큰 선물이었다.


아빠는 천성적으로 배움이나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특별히 열심히 하던 분이어서 회사에서도 진급이 빨랐고, 나는 그로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없는 어린시절을 지낼수 있었다. 하지만, 가난한 집에서 자란 엄마의 몸에 배인 알뜰함으로 특별한 과소비는 없는 생활을 하였다.


국민학교 고학년에 되면서 내가 단 한가지 잘하던 분야인 미술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고, 미술학원 선생님의 권유가 더해지며 예원학교(예술특성화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입학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6학년에 들어서는 오전수업만하고, 오후에는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며 예원학교 입시를 집중적으로 준비하게 되었다.

중상위권이었던 학교성적으로 나를 무시하고, 체벌하던 엄마는 미술 공부를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었다. 나는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나의 미술실력에 대한 주변의 인정으로 인해 자존감도 조금씩 쌓아갔고, 소수만이 할 수 있는 분야에 들어갈 수 있다는 특별함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입시준비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그 기간을 즐겼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서 미술분야에서는 거의 매번 상을 받았고, 미술학원 선생님도 나의 실력에 대해 긍정적이었기에 예원학교 입학시험에 붙을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지고, 입시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예원학교 입시날, 실기시험장에서 다른 아이들의 그림과 내 그림을 비교하며 떨어질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고, 결국 시험에 떨어졌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큰 실패였다. 그리고, 그나마 잘하던 미술로도 엄마를 만족시킬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심리적으로 움츠러들었고, 엄마에게 방어적으로 스스로 거리감을 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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