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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과 반항의 시작

중학교 시절 (진짜 82년생 김지영의 특별한 이야기)

by 김지영 Jiyoung Kim

예원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난 후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국민학교 졸업을 두달앞두고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한 신도시의 새롭게 분양받은 아파트로 가족들이 이사를 가게 되면서 새로운 환경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전학간 학교는 신도시 안에 이제 막 세워진 학교였고, 친구들도 다양한 도시에서(주로 서울에서) 새롭게 전학온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되고, 사춘기에 접어드는 나이에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 친구관계에서 기쁨을 찾기 시작했다.


전학 온 후 두 달 후에 졸업식이 열렸는데 엄마가 친구분들과 함께 졸업식에 왔다. 하지만, 엄마는 축하 해주기보다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졸업식을 참관하고, 졸업식을 마친 후 집으로 가는 길에는 3–4미터 정도 앞서 친구분들과 걸으면서 힐끔힐끔 나를 뒤돌아 볼 때는 화난듯한 표정으로 거의 째려보았다. 집에와서는 다같이 중국집 음식을 시켜먹었는데 엄마가 왜 화가 났는지 알 수 없는 나는 여러가지 추측을 마음속으로 하며 음식은 먹는 둥 마는 둥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나의 국민학교 졸업식날은 지나갔다. 짐작하는 바로는 졸업식 행사에서 특별히 상을 받거나 대표로 축사를 하지 못한 자랑할것이 없는 딸의 모습이 못 마땅하였던것 같다. 또, 몇 달 전에 예원학교 입시에 떨어졌으니 그나마 소질을 보이던 미술분야에서도 눈에보이는 성과가 없이 국민학교를 졸업한 것이다.

엄마의 냉담함과 그로인해 느낀 거절감에 무거운 마음으로 지나간 나의 국민학교 졸업식날은 내가 엄마로부터 마음의 문을 닫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학교와 학원을 다니며 집에서는 거의 잠만잤고, 2학년이 되었을 때는 독서실에 다니게 되면서 거기서 만난 고등학교 오빠들과 친분이 쌓이게 되고, 이쁨을 받게 되었다. 사랑받는 기분을 더 누리고 싶어서 외모도 꾸미고, 부모님 모르게 독서실을 이탈하며 친구들과 오빠들과 어울려 놀러다니기 시작하였다. 당시 어린 학생들에게는 출입이 금지 되었던 노래방에 몰려다니고, 술, 담배를 하는 이탈도 하였다. 엄마의 가계부에 꽂혀 있던 현금 2만원을 훔쳐서 노래방에 가기도 하였고, 밤 늦게 고등학교 오빠들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돌아다녔다. 그런 일탈은 큰 재미였고,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누렸다. 부모님으로부터는 마음의 문을 닫았지만, 친구들과의 관계로부터 사랑을 갈구하며 소속감을 내면에 채웠다.


부모님 몰래 일탈을 일삼던 중학교시절 중 특별한 사건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때 미국 뉴저지로 가게된 어학연수이다. 약 2달동안 친척의 지인인 한인분이 운영하는 어학원을 그 분들 집에서 하숙하면서 다니게 되었다. 영어는 미술 다음으로 잘하고, 재밌어하는 과목이었기에 하루종일 영어공부만 해도 즐거웠고, 미국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것,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라는 교포 친구들을 만나는 것,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것 이 모든 생활이 마치 파라다이스에 온 것 같이 즐거웠다.

하숙하며 지낸 집에서는 그 집의 오빠 둘과 가디언 부모님께 이쁨을 받았고, 어학원에서는 조금만 잘해도 칭찬 받았다(배움의 과정에서 조금만 잘해도 크게 칭찬해주는 미국의 문화를 처음으로 경험하였다.). 한국의 생활에서 갈구하던 인정을 받으며, 앞으로 미국에서 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달간의 미국에서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 부모님께 유학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집안 경제사정이 유학을 보낼만큼 부유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은 허락을 해주지 못했고, 나는 마치 시위를 하듯 부모님으로부터 더 마음을 꼭꼭 닫았다.

당시, 미국 현지로 어학연수를 보내준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터인데 철부지에 반항심 가득했던 중2였던 나는 파라다이스 같은 경험을 했던 미국에 보내주지 않는 부모님이 그저 원망스러웠다.


일탈을 일삼던 나는 공부는 뒷전이었지만 시키는 것은 최소한으로라도 하고, 기본적으로 책 읽는 것을 좋아하여서 중상위권의 성적은 유지하였다. 부모님을 너무나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경기도 내 다른도시에 있는 한 사립 기독교 고등학교에 자진하여 지원하였고, 신생이지만 명문학교였던 그 기독교학교에 턱걸이로 입학하여서 드디어 고등학교를 입학하며 집을 떠나게 되었다.


tempImages6gLGC.heic 몇 년전에 방문하여 찍은 중학교 시절 살던 아파트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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