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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흐 Jul 31. 2020

예술가의 작품을 미리 재단하지 말라

인생은 미완성된 작품과도 같다.

오랜만에 괜찮은 미용실을 찾았다. 기존에 가던 미용실이 있었는데 갈수록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미용실을 직접 발굴하기로 했다. 네이버 지도에서 <미용실>을 검색했다. 검색을 하니 미용실이 수십개가 나왔다. 조흐다 헤어살롱, JOGH KIM 미용실, 조흔 헤어샵 등등등. 세상에 미용실이 이렇게나 많다니! 집 주위에만해도 미용실이 넘쳐났다. 잠시 숨을 고르고 리뷰와 후기에 기반을 둔 제일 괜찮은 미용실을 찾아나섰다. 


그렇게 이곳저곳 검색하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한 군데 발견했다. 평점도 5점 만점에 4.6점 이상이고, 방문자 리뷰도 꽤나 괜찮아보였다. 헤어 디자이너 분들이 너무 친절하고, 결과물도 만족스럽다는 후기들을 보니 가볼만하겠구나 싶었다. 거기다가 국내와 해외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수석디자이너 분들이 직접 머리를 해준다고 하니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해졌다. 그뒤로 전화를 걸어서 바로 예약을 했다. 내 인생에 새로운 미용실이 하나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새롭게 발길을 옮긴 미용실의 결과물은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별 5개(★★★★★)를 주고 싶을 만큼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전 미용실에서는 커트와 함께 다운펌을 해줬는데, 새로운 미용실에서도 커트+다운펌이 가능했다. 새로운 디자이너분의 손길은 남달랐다. 커트를 한 결과물을 보니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색다른 스타일이 나타났다. 커트를 하러 가면 보통 예시가 되는 머리 스타일의 사진을 보여준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사진으로 한 번 보여주는 것이 더 확실하니까. 그들은 다년간의 경험이 쌓인 프로이기 때문에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객이 어떤 스타일의 머리를 원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같은 사진을 보여주더라도 미용사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 결과물은 천지차이다. 이번 사례가 그랬다. 이전 미용실의 미용사분은 매번 꾸역꾸역 일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냥 출근을 했으니까 할 수 없이 일을 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새로운 미용실의 미용사분은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프로페셔널함이 느껴졌다. 고객이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세세하게 물어봤으며, 조금 더 나은 스타일이 나올만한 방향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색다른 스타일, 마음에 드는 스타일이 나온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일에 대한 자부심 덕분인지 에너지가 넘쳤고, 머리를 자르는 입장에서도 긍정적인 기운을 얻을 수 있었다.


또 하나 마음에 든 점은 다운펌이 기가막히게 잘 되었다는 점이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미용실을 계속 다닌 이유는 커트와 함께 다운펌을 해주는 서비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이러한 다운펌은 머리의 사이드 부분(옆머리)만 다운시켜준다. 매번 다운펌을 하기는 했지만 머리가 그렇게 다운되지는 않았다. 약간 다운되기는 했지만 며칠이 지나면 금세 본연의 머리로 돌아왔다. "내 머리가 다운펌에 대한 내성이 이렇게 강하다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번에 새로 가게 된 미용실에서 다운펌을 하니, 내 머리가 다운펌에 대한 내성이 강했던게 아니라 그저 효과가 좋지 않은 다운펌 약을 썼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된 다운펌을 받아보니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옆머리가 아주 그냥 제대로 눌러져서 첫 날에는 옆머리가 텅 비어보일 정도였다. S는 그걸보고 웃기다고 얘기했다. 


이렇게 만족스러운 미용실이었지만 두 번째 방문에서 위기가 찾아온다. 첫 번째 방문의 결과물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새로운 미용실에 계속 다니기로 했다. 그렇게 2번째 예약을 하고 날짜에 맞춰서 방문했다. 그러나 그날따라 디자이너분이 조금 정신 없어보였다. 바쁜일이 있으신건지 컨디션이 안 좋으신건지 조급함이 느껴졌다. 예전과 같은 머리를 유지하고 싶었기에 이전과 같은 스타일로 잘라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커트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저 혼자만의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디자이너분의 조급함이 뼛속까지 전달 된 것일까? 커트를 다 하고 거울을 보니 왼쪽 옆머리와 오른쪽 옆머리의 균형이 맞지 않았다. 한마디로 비대칭이었다. 왼쪽 옆머리는 길이가 너무 많이 잘려져있었고, 오른쪽 옆머리는 예전과 동일한 길이로 잘려진 상태였다. 머릿속이 혼돈(카오스)으로 빠져들었다. 한 마디로 멘붕 상태.


디자이너분이 오늘따라 유난히 컨디션이 안좋아 보였기에 머리가 망한줄로만 알았다. 따로 말씀은 안드렸지만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반전이 숨어있었다. 다운펌도 하고 머리를 감으니 결과물이 꽤나 괜찮은 것이 아닌가? 이번 머리도 꽤 괜찮고 예쁘게 잘 되었다. 예전에도 예쁘게 해주셨는데 이번에도 잘 해주시다니. 다운펌도 제대로 되었기에 만족스러웠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보니 머리가 망한줄로만 알았던 몇 분 전의 상황이 생각났다. 완성되지 않은 결과물을 보고 미리 판단한 것이 괜히 미안해졌다.이러한 경험에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미용사는 고객의 머리를 재창조하는 한 명의 예술가다. 화가의 완성되지 않은 작품을 보고 좋지 않은 판단을 내리는 것은 매우 웃긴 일이다. 내 경우가 그랬다. 예술가의 완성되지 않은 작품을 보고 미리 판단해버렸다. 앞으로는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 미리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글을 쓰면서 또 한 번 반성의 시간을 가지는 중이다). 누군가 완성되지 않은 미용사의 작품을 보고 판단을 내린다면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미용사의 예술작품을 미리 재단하지 말라". 우리의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생은 미완성된 작품과도 같다.


누구나 한 번쯤 "인생 노답이다.", "내 인생은 왜 이러지?.", "더 이상 좋아질 길이 없다.", "열심히 살아서 뭐하냐... 답은 정해져있는데."라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은 인생이라는 작품을 보고 미리 판단을 내리기에는, 앞으로의 작품을 만들어갈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인생을 창조해나가는 한 명의 예술가다. 지금은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작품을 갈고 닦고, 부수고, 다시 재창조하고,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한 순간이지 않을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인생이라는 작품을 잘 다듬은 뒤에야 비로소 그것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을 마주할 때까지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현재의 소중함과 지금 이 순간의 감사함을 느끼며 한 걸음 두 걸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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