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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흐 Feb 20. 2021

국세청이 체납자에게 보낸 최초의 편지

미납된 세금을 독촉하는 편지 속 문장들 <실험의 힘>

국세청이 체납자에게 보낸 최초의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영국 국세청이 보낸 최초의 편지가 지금까지 공개된 적은 없지만, 그 편지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형식을 띠었다.

조흐 님께,
조흐 님에게 부과된 세금 24,382파운드가 아직 납부되지 않았음을 알려 드리려고 이 편지를 보냅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라도 저희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연락처 주소 및 전화번호
영국 국세청

미납된 세금을 독촉하는 편지를 처음 작성한 관리의 신원은 시간의 안갯속에 사라졌지만, 그 업무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계속되었다. 영국 국세청은 매년 똑같은 편지를 써서 모든 체납자에게 기계적으로 보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여전히 정부의 독촉을 무시했다. 그래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업과 정부에서 발견되는 많은 불완전한 시스템들이 그렇듯이, 누구도 열등한 시스템이 존속되는 이유를 알지 못했고, 심지어 그 시스템이 열등하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체납자들이 독촉 편지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이유를 알아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국세청 직원에게는 체납자들에게 독촉 편지를 보내는 게 치과 병원을 찾아가는 것만큼 짜증스레 느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정부의 독촉을 무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세청이 체납자에게 최초의 편지를 보낸 시기보다는 세금을 납부하는 비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10년 영국 정부는 8명의 사회과학자와 공무원으로 '행동 과학 통찰 팀(BIT)'이란 아리송한 팀을 결성했다. 새로운 학문적 성과를 정책에 반영하던 분석가 데이비드 핼펀과 영리하고 야심찬 공무원 오웨인 서비스의 합작품이었다. 그 팀의 임무는 행동과학을 활용해 정부 정책의 효율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BIT 팀은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그들의 아이디어를 공식적으로 채택한 정부 기관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국세청이 행정적으로 귀찮게 생각하던 부문에서 기회를 포착하게 된다. 정부 기관들로부터 주목받기 위해 체납자에게 하루빨리 세금을 납부하도록 동기부여를 하게 된 것이다.

그 후 BIT는 첫 단계에서, 편지를 보낼 체납자들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선택했다. 그러고는 무작위로 두 집단으로 분류한 후에 한쪽에는 원래의 편지, 다른 쪽에는 약간 수정한 편지를 보냈다. 새 편지에는 앞에서 인용한 원래의 편지에 "지금 선생님이 거주하는 도시에서 10명 중 9명이 세금을 완납하셨습니다."라는 한 문장이 더해졌을 뿐이었다. 결과는 과연 어떻게 나왔을까? 겨우 한 문장을 추가했을 뿐이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체납된 세금을 납부한 사람의 비율이 35.8퍼센트에서 37.8퍼센트로 증가한 것이다. "이게 뭔 대단한 일이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총 체납액을 고려하면 수백만 파운드(100만 파운드=약 15억, 21.2.20.)를 징수한 것이 된다.

할 스위스와 BIT는 세금을 독촉하는 편지를 다양하게 다시 쓰며 실험을 계속했다. 한 실험에서는 다음과 같이 다섯 종류의 문장을 추가한 편지를 보냈다. 해당 편지들은 잉글랜드와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약 17,000명의 체납자에게 보내졌다. 아래 문장 중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은 문장은 무엇인지 짐작해보도록 하자.

기본 규범: 10명 중 9명이 세금을 제때 납부합니다.
국가 규범: 영국에서는 10명 중 9명이 세금을 제때 납부합니다.
소수자 규범: 영국에서는 10명 중 9명이 세금을 제때 납부합니다. 선생님은 아직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극소수에 속해 있습니다.
공익 획득 규범: 선생님이 세금을 납부한 덕분에 우리 모두가 국민 의료 보험, 도로, 학교 같은 중요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공익 상실 규범: 선생님이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국민 의료 보험, 도로, 학교 같은 중요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받을 기회를 잃게 됩니다.

가장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낸 문장은 무엇일까? 

기본 규범일까? 공익 획득 규범일까? 국가 규범일까?

다섯 문장 중에는 '소수자 규범'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규범들도 기본 규범보다는 효과적이었다. 영국 국세청은 소수자 규범을 덧붙인 독촉 편지를 보내 190만 파운드를 추가로 거두었다. 따라서 실험 대상에 포함된 모든 체납자에게 이 규범을 사용했다면 1,130만 파운드를 추가로 징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독촉 편지 덕분에 체납 세금이 더 많이, 더 일찍 징수되었다. 

문장의 힘은 강력하다. 위와 같은 사례처럼 짧은 '한 문장'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큰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영국 국세청은 그 후로도 계속된 실험을 통해 세금 납부율을 올리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한 번의 실험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실험을 이어나갔다는 점이다. 한 번 반응이 좋았던 문장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익숙해질수록 그 효과는 낮아지기 마련이다. 

계속해서 더 좋은 효율을 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반복되는 '실험'이 필수다. 일에서든, 인생에서든, 우리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최상의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단 한 번에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실험의 힘을 직접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

참고 도서: 실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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