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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흐 Aug 13. 2019

그럴 거면 헬스장 왜 끊었어?

정기 결제권의 함정,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2019년 새해가 밝아왔다.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보통은 새해가 밝으면 올해는 어떤 일을 할지 계획을 세울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운동, 다이어트 등이 있다. 올해부터는 꼭 운동을 시작하자고, 건강을 챙기자고 많은 사람들이 다짐할 것이다. 이러한 니즈를 반영해서인지 헬스장에서는 각종 이벤트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하고 여러가지 방식으로 홍보를 하기도 한다. 전단지에는 여러가지 홍보 문구가 써져있겠지만 그중 눈에 띄는 부분은 단연 가격이 아닐까 한다. 


보통은 정기권으로 1개월, 3개월, 6개월, 12개월로 나눠져 있는데 한 번에 결제하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총 가격은 줄어든다. 즉, 1개월 결제시 4만 원, 3개월 결제시 10.5만 원(월 3.5만 원), 6개월 결제시 18만 원(월 3만 원), 12개월 결제시 30만 원(월 2.5만 원)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총 가격'보다 1개월당 결제하는 비용에 집중하게 된다. 12개월 정기권을 결제하면 매월 1.5만 원이 할인되는 것이다. 이는 헬스장 12개월을 일반결제하는 비용인 48만 원 보다 18만 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경우에 보통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할인을 받기 위해서, 또는 미리 결제를 해두면 더 열심히 다니겠지 라는 마음으로 3개월 이상 결제를 진행하게 된다. 이렇게 2019년 1월 1일에 3개월 이상 헬스장에 결제를 한 사람이 100명이라고 가정해보자. 2달이 지난 기간 즈음에는 과연 몇 명이 헬스장에 꾸준히 다니고 있을까? 



당신의 예상 그대로


Photo by Fabrizio Verrecchia on Unsplash

예상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초기에는 헬스장에 열심히 다녔겠지만 직장에 바쁘다는 이유로, 오늘 하루 피곤하다는 이유로, 약속이 있다는 이유로 점점 운동에 소홀해지게 되면서 출석률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물론 돈이 아까워서 계속 다니겠다는 마음도 있겠지만 그 마음의 크기도 점점 줄어들게 된다. (비슷한 예로는 그릭픽 스키장의 텐팩 정기권 상품이 있다. 주말 5일권, 평일 5일권 등의 상품을 4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했는데 그중 60%만이 실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ㅡ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中) 


그렇다면 큰 비용을 한 번에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에 대해서 덜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학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매몰비용'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 매몰비용은 어떤 선택의 번복 여부와는 무관하게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미 지불한 비용)을 뜻한다. 


매몰비용의 중요한 특성중 하나는 100만 원이든, 1,328만 원이든 미리 결제한 부분에 있어서는 언젠가 그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헬스장 정기권을 미리 구매한 비용도 시간이 갈수록 그 중요도가 낮아진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이미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에 헬스장에 간다는 것은 곧 '무료'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덜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된다. 



소중한 에어팟이 콩나물로


이는 신용카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120만 원의 최신 스마트폰을 구매한다고 가정하자. 이를 일시불로 현금으로 바로 지불한다면 이번달 지출이 너무 커져서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신용카드를 통해서 12개월 할부로 구매를 한다면 지금 당장 큰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 부담이 많이 완화된다. 


헬스장 정기권을 미리 모두 결제하는 것보다 차라리 신용카드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신용카드는 할부이기 때문에 매월 결제를 하지만 헬스장 정기권은 미리 모든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에 지불 후에는 더이상 비용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에어팟을 새로 구매한 뒤 처음에는 애지중지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덜 중요하게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신형 스마트폰을 구매했을 때 처음에는 보물단지 처럼 액정을 매일 닦고 애지중지 하지만 나중에는 흠이 생기고 폰을 떨어뜨려도 큰 감흥이 없는 것과도 같다. 이처럼 우리는 미리 지불한 비용에 대해서는 시간이 갈수록 감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대표적인 원칙이 하나 있다.




매몰 비용을 무시하라.

매몰 비용을 무시하라는 말은 '이미 엎질러진 물' 또는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일 뿐'이라는 말과도 같다. 이미 지불한 비용에 대해서는 일체 생각하지 않고 판단을 내리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헬스장을 3개월 결제하고 꾸준히 다니다가 다리가 다쳐서 통증이 심하다면 돈이 아까울지라도 당분간 집에서 쉬라는 것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비용이 아까워서라도 일단은 헬스장에 가서 팔 운동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빈스 라는 사람은 테니스 회비 1,000달러가 아까워 팔꿈치 통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테니스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증상이 더 악화되어서 결국에는 테니스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는 도대체 왜 그랬던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매몰 비용'에 집착하는 것일까? 


위 사례 외에도 매몰 비용에 대한 부정적인 사례는 여러가지가 있다. 해외여행을 가서 95사이즈 티셔츠를 사왔는데 막상 집에와서 입어보니 너무 작아서 못입는 경우이다. 이럴경우 대부분 돈이 아까워서라도 몸에는 불편하지만 집에서라도 조금씩 입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여섯 살 난 어린 딸에게 입힐 드레스를 3벌 구매했는데 이제 치마는 싫다면서 바지를 입겠다고 고집을 피울 경우에도 해당한다. 딸은 옷을 입고 싶어하지 않는데 엄마의 입장에서는 딸을 입히려고 옷을 3벌이나 구매했기 때문에 아까워서라도 꼭 입으라고 강요한다. 딸이 돈에 대한 관념이 없다면서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왜 우리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매몰 비용을 무시하라'라는 말을 지키지 못할까? 매몰 비용을 무시하면 마음이 편안할텐데 말이다. 이유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콘을 넘어 이제는 인간 중심으로!


경제학들이 자신의 이론을 가정할 때는 가상의 존재인 이콘을 모형에 두고 있다. 이콘은 인간(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경제(economics)를 합친 단어로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moicus)를 뜻한다. 이콘은 '사람은 누구나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선택한다'는 전통 경제학의 모형이 되었다. 이러한 이콘은 언제든지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선택하기 때문에 현실의 인간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매몰 비용을 무시하라'라는 말도 '이콘'이라는 가정하에 성사될 수 있는 원칙인 것이다. 


합리적인 인간인 이콘에 의문을 제기한 많은 학자들이 전통 경제학에 반하는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경제학을 만들어냈다. 행동경제학은 주류경제학의 '합리적인 인간(이콘)'을 부정하는 데서 시작하여, 경제주체들이 제한적으로 합리적이며 때론 감정적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인간의 실제 행동을 심리학, 사회학, 생리학적 견지에서 바라보고 그로 인한 결과를 규명하려는 학문인 것이다. 이러한 행동경제학은 실제 인간을 모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정확히, 제대로 분석하여 결과물로 도출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사람들이 행동을 바꾸도록 만드는 '해빙'이라는 정의와 "증거에 기반을 둔 정책을 증거 없이 실시할 수는 없다."등의 여러가지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행동 경제학은 단순한 관찰로부터 출발했다. (중략) "과거의 지혜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을 때, 이를 뒤집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여러분 주변의 세상을 둘러보는 것이다. 여러분이 바라는 세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둘러보자. ㅡ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中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뭔가를 모르고 있어서가 아니다. 너무나 확실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예측의 전과를 살펴보는 수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자만한다. 그리고 치명적인 확증 편향의 희상자가 되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즉 스스로 만들어놓은 가설에 부합하는 증거들만 받아들인다. ㅡ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中
"적어두지 않았다면 그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ㅡ 린다 긴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한 번 쯤 들어본 말일 것이다. 과거와 비교해서 현재는 그 어느때보다 연구하기 좋은 인프라와 많은 조건들이 갖춰져 있다. 이러한 조건들이 IT, 경제학, 신경학, 컴퓨터 등 다양한 분야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학이 나에게 쉽지 않은 분야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꼭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된다. 어려운 책이었지만 배운 내용도 많다. 


경제학에서도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정확한 모형을 설정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경제학에서 '이콘'이라는 잘못된 모형을 설정한 것처럼, 우리의 일상에서도 잘못된 모형을 설정하는 함정에 빠지지 말도록 주의해야되지 않을까? 완벽한 세상이란 없다. 완벽한 사람도 없다. 그저 그런대로 살아갈뿐. 스스로가 기준을 잘 세워서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제학의 새로운 분야인 행동경제학에 대해서 알고싶다면, 우리 일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선택의 사례들을 알고 싶다면 리처드 탈러의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을 꼭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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