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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흐 Nov 16. 2019

프로 일잘러에서 15시간 SNS 중독자가 되기까지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나는 퇴사를 선언했다.


언젠가의 나는 SNS 중독자였다. 

하루 24시간 중 15시간을 SNS를 하는 데 사용했으니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스마트폰을 하는 데 사용했다고 보면 되겠다. 


그 당시의 나는 매우 게으른 상태였으며 하루를 그저 빈둥빈둥 보내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SNS 세상 속 재미있고, 화려하고, 열정적이고, 활동적인 모습들을 보며 그저 좋아요만 누를 뿐이었다. 그때의 내가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태해지기 전의 나는 2년 동안 하루하루 모든 시간을 일을 하는데만 시간을 보냈다.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새벽까지 일하고 퇴근하는 등. 거의 매일 회사에 살다시피 했다. 실제로 회사에서 잔 적도 많았고. 처음의 열정 그대로를 가지고 매일매일 일을 해나갔다. 주말에도, 친구를 만날 때도, 해외여행을 가서도 일 생각뿐이었다. 


어느 날은 친구랑 오사카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짐을 꾸리는데 노트북은 당연히 덤으로 들어갔다. 여행을 가서도 의뢰인의 문자에 급히 답장을 하고는 했다. 여행지의 멋진 풍경을 보면서 덜 멋지게 답장을 했다. 


언젠가의 친구는 말했다.

"여행 갈 때 노트북이나 업무용 폰 좀 놔두고 가면 안 되겠냐?"
"와... 조흐 네가 노트북 놔두고 마음 편하게 여행하는 것 좀 보고 싶다."


여행을 가서도, 일상을 보내면서도 하루 종일 일 생각을 하는 내가 친구는 안쓰러웠나 보다. 

또 다른 친구는 말했다. 

"너처럼 이렇게 일에 미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살면 살아지냐?"



갑자기 찾아온 슬럼프

이렇게 열정적으로 일을 하던 나였지만, 일을 한 지 2년 정도가 되니 슬럼프가 찾아왔다. 어느 날은 오른쪽 목과 어깨 사이에 담이 심하게 걸렸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인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내 몸이 내 몸인 것 같지 않은 그런 기분이었다.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아보고 휴식을 취하기도 했지만 심하게 찾아온 담은 나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담에 걸려 일을 하던 어느 날 갑자기 현타가 찾아왔다. 

"나는 무얼 위해 일하고 있는 걸까?"

"내 인생에서 일이란 무엇일까?"

"이렇게 아플 때도 퇴근하지 않고 일을 하는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현타가 찾아온 뒤로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일에 대한 불타오르는 열정을 가지고 있던 나지만 이제는 일을 하기가 싫어졌다. 그저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숨만 쉬고 싶었다. 바다 옆에서 한가롭게 누워있던가.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 나는 퇴사를 선언했다. 

대표님에게 내 의사를 전달했다. 회사의 대표로서는 내가 퇴사하는 것을 막고 싶다고 하셨다. 하지만 인생의 형으로서는 앞으로 내 인생을 위하여 퇴사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 대표님의 말씀이 고마웠다. 그렇게 대표님은 나의 퇴사를 하루 만에 받아들이셨다.


퇴사 후에는 제주도에 가서 게하 스텝으로 몇 달 살아보기도 하고 청주로 올라가서 친구집에서도 몇 달 살아보기도 하는 등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그후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다니던 학교도 마저 다니기도 했고. 고향에서 지내는 나는 어느 순간 나태한 삶을 살고 있었다. 과도한 열정을 가지고 살아와서 일까. 아니면 일에 빠져 살던 그 시간들이 없어지니 공허한 마음이 들어서였을까.


게으름뱅이에 SNS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집에 있으니 마음의 안정감이 느껴졌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 저녁은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큰 걱정이 없었다. 그저 살아갈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내가 바라던 삶이 이런 것이었을까?"

내 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하루를 시간 단위로 쪼개서 보니 현재의 내가 무엇을 하며 사는지 알 수 있었다. 하루 24시간 중 15시간을 SNS를 하는데 시간을 들인다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안전한 공간에서 머무니 한없이 나태해지고 게을러졌다. 정신을 차리고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월 뒤 나는 제주도로 향했다. 

더 이상 고향집에 머무는 것은 답이 없다고 느껴졌다. 제주도에 갔을 때는 돈이 많이 없는 시기였기에 어쩔 수 없이 매일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퇴사 후 쭉 쉬다가 다시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시간과 장소에 대한 제약은 없었다. 그러나 매일 돈을 벌어야지만 제주도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제주도 하루 살이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다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재미있게 일을 해나갈 수 있었다. 퇴사 후 2년 뒤의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SNS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새로운 일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나태함과 게으름에서 벗어났다. 하루하루를 더 소중히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SNS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만 드문드문 사용하기는 하지만. 사용을 하더라도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는 내용의 정보만 보고는 한다. 과거에는 SNS를 사용하는 것이 큰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SNS를 하는 그 순간이 즐겁다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처럼 하루 15시간 정도 SNS를 하는 것이 아닌
30분~1시간 정도는 일상의 재미를 위해서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SNS든, 책이든, 무엇이든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는 달라진다. 책 한 권을 예로 들어보자.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꿔준 터닝포인트가 된 의미 있는 책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라면 받침의 용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수 있다. 


나처럼 아무 의미 없이 하루 15시간 SNS를 하는 사람들은 없었으면 좋겠다. 직업적인 부분이라면 할 수 없겠지만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라면 조금씩 거리를 둬보는 것은 어떨까?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처럼 거주하는 환경을 아예 바꿔버리거나, SNS 자체를 삭제해버리는 방법도 있다. 또는 SNS보다 재미있는 일들을 만들어내면 그만이다. 


SNS 중독자라면 분명 다른 분야에서도 중독 기질을 발휘할 것이다. 한 분야에 덕후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왕 중독될 거라면 조금 더 생산적인 것에 중독돼보는 것은 어떨까?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당신의 중독을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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