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면서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확실히 신축이기도 하고 싱크대부터 바닥, 화장실, 벽걸이 TV, 소파까지 모든 것이 새 것이었다. 그리고 첫 입주자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미끄러져버렸다. 영등포시청역 주위에 나름 괜찮은 방이 2개 있었는데, 한 곳은 정말 마음에 들었지만 나와 계약 조건이 맞지 않았다. 다른 한 곳은 오피스텔이라 너무 애매했다. 창이 크고 넓고 뷰가 좋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거주하기에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영등포시장역 주변은 계속해서 재개발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갈수록 많은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라 추후에 조망권과 일조권 확보가 제대로 될지는 미지수였다. 주변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서 밤에 무서울 거 같기도 했고. 결국에는 그날도 방을 계약하지 못하고 쓸쓸히 에어비앤비 숙소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문래역을 거치고 신림역을 거쳐서 서울대입구역에 이르게 된다. 1달 넘게 방만 알아보고 다니니 지치기도 하고 "그냥 대충 아무 데나 구해서 살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몇 년 동안 계속 살아갈 집인데 무턱대고 계약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방을 구하기가 이렇게 힘들었던 이유는 <사업자 등록증 주소지> 때문이다. 1인 기업으로 사업을 하고 있었기에 사업자 등록증 주소지가 필요했다. 사업자 주소지를 이사 가는 집으로 하려고 했는데 건물주 또는 집주인도 주택 임대사업자로 집 주소를 등록해뒀기에 중복으로 주소지를 설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러한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아야 했기에 방을 구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해도 사업자 주소지 등록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사업자 주소지 등록이 되는 곳은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부분 오피스텔이 사업자 주소지 등록이 가능했다. 오피스텔이라도 사업자 주소지 등록이 되지 않는 곳도 많았는데 예상과는 달라서 흥미로웠다.
그렇게 어렵게 방을 구하던 나는 사업자 주소지 등록이 가능해야만 한다는 그 조건을 없애버렸다. 사업자 주소지는 따로 구하기로 하고 오로지 집이 어떤지만을 보기로 했다. 조건이 많아질수록 집을 구하기 어려워질 것을 알았기에. 직접 경험해보니 사업자 주소지 등록이 가능한 집은 하늘에 별따기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2호선 라인이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는 투룸 쓰리 베이 구조에 딱 걸맞은 그런 집이었다. 신축이기도 하고, 높은 층에다가 창은 넓고. 남향인 그런 집. 1달 넘게 수많은 집들을 거치다 보니 내가 원하는 집이 어떤 구조인지, 어떤 생김새인지, 어떤 느낌을 풍기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이제 부동산에 방을 보러 가더라도 내가 원하는 조건의 방만 딱 말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첫 느낌은 보통이었다. 그래도 방의 구조가 괜찮고 남향인 데다 내가 원하는 구조로 방이 잘 나뉘어 있었다. 다른 방들도 둘러봤지만 지금의 집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 다른 방들은 뭔가 한 두 가지씩은 큰 단점들이 보였다.
그 당시의 내가 지금의 집을 선택한 이유는 아주 마음에 드는 최상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차선책으로는 아주 훌륭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을 계약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훌륭한 결정이라고 본다. 이 집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몇 개월 더 집을 보러 돌아다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의 집은 거주하는 환경도 너무 좋고 주변 인프라도 너무 잘 되어있어서 되게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혼자 살기에 월세가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삶의 질은 그 이상으로 높아졌다. 내가 월세 100만 원 이상의 집에 살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지만 지금은 그렇게 살고 있다.
지금의 월세를 내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을 만큼의 돈을 벌자고. 지금은 부담이 되겠지만 돈을 벌 수밖에 없는 환경설정을 만들면 어떻게든 돈을 벌어낼 것이라고. 내가 제주도에서 하루살이 생활을 하면서 매일 살기 위해서 돈을 벌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월세를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만 하는 환경을 만들어낸 것이다.